수난과 극복의 역사 이쯤에서 해병대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자. 해병대 창설은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 진압작전에서 단시간에 적진으로 침투할 수 있는 상륙작전부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신현준 하지만 그 시작은 초라했다. 1949년 4월15일 경남 진해 덕산비행장 격납고에서 해군 가운데 선발한 380명(이중 병은 가입대한 해군 이렇게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출발했음에도 창설 때부터 엄격한 군율과 위계질서를 유지한 해병대는 6·25전쟁에서 ‘귀신 잡는 해병’으로 해병대는 또 1965년 10월 건군 이래 최초의 해외 원정군인 청룡부대를 파월(派越), 1972년 2월 귀국 때까지 줄곧 전장의 최선봉에 해병대는 6·25전쟁과 베트남전에서 가장 험난한 전투를 치러냈다. 생명의 위협에 직면한 전투현장에서 이룬 업적은 빛나는 전통으로, 명예를
1987년 사령부 재창설 하지만 해병대에도 시련은 있었다. 창설 24년6개월 만인 1973년 10월 ‘경제적 군의 관리 운영’이란 명목으로 해병대사령부 및 그러나 해군에 14년간 통합 운용되던 해병대는 전력관리상 문제점이 노출돼 상륙작전에 관한 지휘구조의 개선이 필요해짐에 따라 해병대 부대를 수도 서울의 관문인 서부전선과 백령도·연평도 등 전략도서 방어를 주임무로 하면서 유사시 적의 옆구리와 후방을 강타하는 상륙작전을 전개해야 해병대의 주요 전력 중 기동장비는 K-1 등 2종의 전차 100여 대, KAAV (Korean Assult Amphibious 명인·기인 열전 역사가 오랜 만큼, 해병대를 거쳐간 인물도 많다. 우선 정계에선 현역 의원으로 한나라당 김기춘·공성진·박혁규·정병국 의원과 열린우리당 관계 인사로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박상범 전 국가보훈처장과 이희일 전 동자부 장관, 작고한 홍성철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있다. 거의 재계에선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 김무일 현대INI스틸 대표이사 겸 부회장, 김동렬 아세아시멘트 사장이 해병대 출신이다. 언론계에선 조선일보 부사장을 지낸 안병훈 LG상남언론재단 이사장, 연합통신 사장을 지낸 현소환 ‘뉴스앤뉴스’ 대표, SBS 사장을 지낸 연예인으로는 탤런트 임채무·김상중, 가수 김흥국·남진, 개그맨 임혁필씨가 해병대 출신이다. 배우 장동건을 해병으로 내세운 영화 ‘해안선’을 창설기와 6·25전쟁기, 베트남전쟁기의 인물 중에도 독특한 개성과 해병정신을 보인 이들이 수두룩하다. 해병대 기합의 대명사로 불린 강복구 20여 년의 해병대 정훈장교 복무경험을 바탕으로 ‘해병대의 명인·기인전’(전2권) 등 해병대 관련 저서만 10여 권을 펴낸 정채호(79)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1950년대 명문여대생 등 70여 명의 부녀자와 엽색행각을 벌인 ‘희대의 카사노바’로, 재판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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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7 11:41
1000期 맞는 대한민국 해병 그들만의 세계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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