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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期’ 맞는 대한민국 해병, 그들만의 세계
“국적 포기? 우린 재수, 3수하며 ‘빨간 명찰’ 달러 간다,
필승!”




2개 사단·1개 여단, 부대 규모 세계 3위

해병대는 명문대? 입대 경쟁률 5대 1
‘재입대파’ ‘가족 해병’에 카레이서까지
여성 해병 66명 복무…1950년 ‘해병 4기’ 중 126명도 여성
‘미래 해병대’, 항공단·군수지원단 갖춘 공지기동부대 지향
80만 예비역의 구심체 해병대전우회, 100% 기여금으로 운영









 

“997기!”“악!”
                        

“997기! 목소리 그것밖에 안 나오나?”



“아닙니다∼!”

“천자봉 행군하느라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6월9일 오후 3시30분, 해병대 교육훈련단(단장 양수근 준장) 제1신병교육대대 연병장. 413명의 훈련병이 대대장 김영은 소령 앞에
일사불란하게 도열했다. 엄청난 인내와 체력을 요하는 까닭에 이른바 ‘극기주(克己週·일명 ‘지옥주’)’라 부르는 훈련 5주차를 맞아 이들은 해병대
신병교육의 극점(極點)으로 통하는 천자봉(원래 천자봉은 경남 진해에 있지만, 포항으로 훈련장소를 이전한 이후 포항시 영일읍의 운제산(해발
474m)을 ‘천자봉’이라 부른다) 행군을 막 마친 참이었다.

새벽 6시에 시작된 행군은 9시간여 만에 끝났지만, 연병장의 흙먼지는 채 가라앉지 않았다. 행군 전날 배식량은 반으로 줄었고, 지난 밤새
이어진 목봉체조 등 체력단련으로 1∼2시간밖에 눈을 붙이지 못해 몸은 말 그대로 파김치다. 게다가 수은주가 30℃까지 치솟은 무더운 날씨.
저마다 만감이 교차하면서도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간다. 점점 무감(無感)해진다. 체중과 함께 30kg이 넘는 완전군장을 왕복 24km 행군 내내
어렵사리 지탱해준 두 무릎이 그제야 의지와 무관하게 후들거린다.

“훈병 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훈병 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훈련교관들이 각자 맡은 소대를 돌며 훈련병의 가슴 오른쪽에 붙은 노란색 명찰 위로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 명찰을 하나씩 덧달아주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악에 받친 듯 관등성명을 외치는 소리가 터져나온다. 훈련교관이 명찰을 달아준 훈련병의 어깨를 툭 치며 던지는 딱 한마디.

“고생했어.”

이어 연병장에 낮게 깔리는 해병대가(歌) ‘나가자 해병대’.

“우리들은 대한의 바다의 용사, 충무공 순국정신 가슴에 안고….”

비록 10분 남짓한 사이에 끝났지만, 빨간 명찰 수여식은 고되기로 소문난 훈련을 마침내 견뎌내고 비로소 한 명의 해병으로 인정받는 자리.
이제 남은 건 1주간의 보충교육뿐. 그런데도 감회에 젖어 눈시울을 붉히는 훈련병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안다. 5월2일 가입소해 이제 며칠 후면 수료식을 마치고 각기 배치받은 실무부대로 떠날 즈음, 6주간 동고동락한 동기들과
자신을 쉴새없이 ‘갈구던’ 훈련교관들과의 연(緣)을 되새김질하며 봇물처럼 터질 눈물을 결코 감출 수 없으리란 것을. 그것은 올해로 창설
56주년을 맞기까지 쉼없이 이어져온 해병대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8월5일 1000기 신병 탄생

대한민국 해병대(ROK Marine Corps)가 ‘1000기(期)’ 신병을 맞는다. 공군 등 타군의 병(兵)에도 기수란 게 있지만,
해병대에서 그것은 존재의 표상(表象)과도 같다. 전원 지원자로만 구성되는 부대 특성상 1000기수를 이어왔다는 자부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해병대에도 징집기수는 있었다. 전쟁 발발시 동원예비군으로 활용하기 위해 서울, 대구·경북, 인천, 제주 등 특정 지역에선
1975년부터 연간 24개 기수 중 8개 기수 병력을 무작위로 차출, 충원해왔다.




하지만 2003년 징집제도가 완전폐지(제주도 및 도서지역 상근예비역은 예외)되면서 해병대의 모든 병력은 100% 지원자로 채워진다. 이를
두고 해병대 장병들은 “한 명의 지원자는 열 명의 징집자만한 가치가 있다”며 스스로 우수성을 뽐낸다.

1000기 신병 모집 합격자들은 6월21일부터 해병대 교육훈련단(포항시 남구 오천읍)에서 5박6일의 가입소기간을 보낸 뒤 6월27일
6주간의 신병교육을 시작한다. 그리고 오는 8월5일 수료식을 마치고 1000기 해병으로 탄생한다.

한국 해병대의 위상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병력 규모는 2만7000여 명(장교 2000여 명, 부사관 4300여 명, 병
2만700여 명). 해병대를 보유한 57개국 중 미국(17만4000명), 프랑스(3만3900명), 대만(3만명)에 이어 네 번째다. 북한의 경우
상륙군 운용능력 및 장비가 탁월한 해군 소속 특수부대 ‘해상저격여단’ 등 해병대 기능을 하는 병력이 7700명 선이다.

2개 사단과 1개 여단을 갖춘 한국 해병대는 부대 규모 면에서도 3개 원정군으로 이뤄진 미국, 3개 사단급의 대만에 이어 세계 3위.
더욱이 상륙작전 수행능력은 미국·영국 다음으로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부대 사단본부 경비를 해병대 중대급 병력이, 바그다드의 주(駐)이라크 한국대사관 경계 및 방호를 소대급이,
주(駐)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관(카불 소재) 경계 및 방호를 분대급이 맡아 언제 어떤 유형의 테러행위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파병 국가
병력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라식수술까지 하는 지원자들

타군에 비해 훨씬 적은 병력에도 막강 전투력을 갖춘 ‘강소군(强小軍)’ 해병대. 그 인기는 가히 상한가를 달린다. 주지하듯, 해병대는
수륙양면에서 전투할 수 있도록 특별히 편성된 부대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격렬하기 짝이 없는 첫 전투
신(scene)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보듯, 앞에는 적, 뒤로는 바다가 버티고 있는 극한상황이 바로 해병대가 맞닥뜨려야 할 전장(戰場)이다.

상륙작전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주요 변수. 그런데도 병력과 장비, 물자의 추가지원은 불가능하다. 상급 부대나 인접 부대, 후속 부대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는 여건에서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일단 적 해안에 상륙하면 그야말로 배수진을 쳐야 한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되돌아올 수 없는 법. ‘광란의 사선(死線)’에서 살아남으려면 싸워 이겨야만 한다.

그렇기에 훈련강도는 셀 수밖에 없다. 신병교육기간은 6주. 함상견학에 1주일이 소요되는 해군과 기간이 같고, 육군과 공군보다는 1주가
길다. 그런데도 매월 2회씩 연간 24개 기수를 뽑는 신병 모집엔 지원자가 끊이지 않는다. 한 기수는 대략 500명 선. 만 18∼25세의 고졸
또는 동등 이상 학력소지자로 신체등위 3급 이상이면 지원할 수 있다. 선발전형은 서류전형(고교생활기록부)과 면접, 신체검사 및 체력검정으로
이뤄진다. 복무기간은 24개월. 육군과 같고, 공군(28개월)과 해군(26개월)보다 짧다. 1950∼70년대엔 30∼36개월을 복무했지만,
1993년 이후 26개월로 줄었고, 2003년부터는 현 복무기간이 적용돼왔다.

지원율이 높다보니 해병대에 합격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2004년 지원율은 3.5~5대 1. ‘재수’ ‘삼수’를 하는 신세대가 허다하다.
한번 재도전할 때마다 1점씩 가점된다. 이 때문에 2회 이상 재도전해 합격하는 사례가 2004년 기준으로 기수별 평균 47%에 이른다. 오죽하면
“해병대 경쟁률이 일류대 입시보다 높다”는 조크가 나올까. 실제로 2005학년도 서울대 정시모집 평균경쟁률은 4.97대 1이었다. 심지어
2003년엔 ‘16전17기’로 입대에 성공한 ‘전설의 신병’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6월15일 현재, 1000기 신병 507명의 신상명세는 베일에 가려 있다. 하지만 이들이 6월21일 가입소한 뒤 그 면면이 조금씩 공개되면
그들의 선임병들처럼 수많은 화젯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물론 기수마다 30∼40명은 가입소기간 중 정밀 신체검사 결과 부적격 판정을 받거나 본인의
심경 변화에 따라 귀가조치된다. 이렇듯 해병대 입대는 자발적 의지에 달려 있다. 시력이 좋지 않은 열성 지원자는 라식수술을 한 뒤 입대하기도
한다.

새로움 창조하는 강인한 생명력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해병대를 택하기는 부사관이나 장교도 마찬가지. 6월25일 소위 임관을 앞두고 교육을 받고 있는 사관후보생
100기(교육기간은 부사관 교육과 같은 14주. 해병대에선 이를 ‘신분전환교육’이라 한다) 188명(여성 6명) 중에도 ‘개성 만점’의 인물이
적지 않다. 특히 타군이나 해병대에서 이미 병역을 마친 ‘재입대파’가 많다.

손상명(육군 2사단), 이동길(육군 1사단) 후보생은 육군 병으로 전역했고, 박현석(28) 후보생은 육군 중위 출신이다. 한상진 후보생은
해군 부사관 출신, 박태상·장훈상·정현식·이은찬 후보생은 모두 해병대 병으로 제대했다. 이효명 후보생은 사관후보생 99기로 임관한 오빠 이민오
소위와 함께 ‘남매 해병’이 됐다.

태권도 선수이자 사범 출신인 이대철(23), 프로권투선수 출신인 홍영수(24) 후보생을 비롯한 체력파에다, 자동차 경주 심판원으로 활동하며
레이싱에서 2년 연속 우승한 윤석빈(28) 후보생 같은 이색 경력 소유자도 적지 않다.






                                                

해병대 최초의 여성 DI
이지애 하사, 첫 여성 훈련소대장 이미희 중위, 영국 국적과 홍콩 시민권을 팽개치고 입대한 장호재 훈병(왼쪽부터).

왜 해병대인가. 쉽고 편한 것만 좇는다는 요즘 젊은이들이 그토록 해병대를 열망하는 이유는 뭘까.

“해병대에는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강인한 생명력 같은 것이 있다. 신병 모집에 잇따라 떨어질 때 우울과 낙담이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새로운 의지가 생겨났다.”

일곱 번 도전한 끝에 1000기 신병으로 입소하게 된 박제성(20·광주시 금호동)씨는 “고교 때 좀 ‘노는’ 바람에 출석률이 좋지 않아
계속 떨어진 것 같다”며 “그 시절의 나태함이 후회스러워 지난해 6월 대학을 한 학기만 마치고 휴학한 뒤 해병대 병 모집 전형에 응시하면서
자동차 범퍼 제조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왔다”고 했다. 그의 형 현수씨도 해병대 제1사단에서 포병으로 복무 중이어서 이들은 ‘형제 해병’이
된다.

역시 1000기로 입소할 대전의 김영상(19) 군도 다섯 번 시도한 끝에 합격했다. 하지만 13차례의 도전 끝에 합격했으나 합격 발표
이전에 입영영장이 나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육군으로 입대한 대전의 나모(21)씨같이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도 있다.

병역의무를 기피하려 한국 국적마저 포기하는 이들이 줄을 잇는 요즘이지만, 해병대에선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997기 장호재(22)
훈련병은 영국 국적과 홍콩 시민권이 있음에도 해병대에 입대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그는 입대 전 골드만 삭스
한국지사에서 근무했다.

6월9일 빨간 명찰 수여식에서 만난 장 훈련병은 “나는 결코 영국인, 중국인이 아니다. 죽어도 한국인임을 포기하기 싫었다”며 “훈련이 다소
힘들긴 했지만, 강한 한국인임을 잊지 않으려 입대한 만큼 내 진정한 뿌리가 어딘지 분명히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6월17일 수료식을 마친
뒤 해병대 제1사단 보병으로 배치될 예정이다.

DI와 훈련병은 ‘일촌(一寸)’

이른바 ‘기수발’에 죽고 산다는 해병대의 끈끈한 결속력은 해병대 교육의 본산인 교육훈련단에서 시작된다. 민간인을 해병으로 탈바꿈시키는
‘해병 만들기’의 주역은 ‘DI(Drill Instructor)’라 부르는 훈련교관. 해병대 훈련교관과 훈육요원은 타군과 달리 100%
부사관으로 이뤄진다. 이들은 병보다 우위의 체력과 정신력을 가져야 하는 만큼, 엄선된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그래서 해병대 전투병과 하사는
한결같이 DI를 꿈꾼다.

DI는 실무부대 경험이 3년 이상이고 하사 이상인 부사관 가운데 근무평정과 체력, 품행이 뛰어난 이들이 선발된다. 일반인도 익히 아는
‘빨간 모자’가 그들이다. 훈련병에겐 때로 공포와 경계의 대상이자, 때론 엄정하면서도 속정 깊은 맏형 같은 존재다. 특히 타군에 비해 장교
비율이 7.1%로 낮고 진급마저 적체돼 만성적인 장교 부족 현상을 겪는 해병대에선 그 공백을 메우는 부사관의 역할이 매우 크다(육군 장교 비율
8.6%, 해군 14%, 공군 14.6%).

해병대 지원자 중엔 체력에 자신 있는 이도 여럿. 반대로 내성적이고 유약한 심성을 ‘개조’하려는 이들도 상당수다. 이들 또한 DI의 지도에
따라 혹독한 교육과정을 거친 뒤론 해병대 특유의 가족적 단결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어느새 상관의 명령이라면 죽음도 마다않겠다는 강한 충성심과
형제애와도 같은 동료의식으로 무장된다. 특히 훈련병은 물론 부사관후보생과 사관후보생도 절대 피해갈 수 없는 ‘극기주’ 훈련은 졸음과 허기를
달래며 정해진 훈련을 낮밤으로 받아야 한다. 그 정점인 천자봉 행군은 해병대 창설 당시 ‘해병 1기’ 수료를 기념해 사령관 이하 전 병력이 경남
진해의 천자봉을 오른 이후 부동(浮動)의 전통으로 굳어졌다. 이 무렵이면 누구나 한계에 달한 자신의 육체를 정신력으로 지탱해가며 ‘해병의 길’을
깨닫게 된다.

해병대에서 쓰는 고유의 용어도 그들만의 일체감 형성에 한몫 한다. 점호는 ‘순검’, 식판은 ‘츄라이’, 취사병은 ‘주계병’, 퇴소식은
‘수료식’, 자대(自隊)는 ‘실무부대’ 하는 식이다.




해병대의 모방하기 힘든 상경하애(上敬下愛) 정신은 사람의 성격이나 인성을 바꿔놓기도 한다. 교육훈련단 제1신병교육대대의 고참 DI
김건구(28·부사관후보생 243기) 중사도 그중 한 명이다. 한때 그의 직속상관이던 한 장교는 안동고 축구선수 출신인데도 이른바 해병으로서의
‘각(角)’이 좀체 나오지 않던 그에게 5년 전 DI 선발에 지원할 것을 권했다. 그후 김 중사는 훈련병들이 ‘독종’으로 부를 정도의 ‘FM
해병’이 됐다.

“교육훈련 내용은 DI별로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다만 훈련병들과 함께 뛰어다니며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지적하고 챙기기 때문에
‘독종’으로 부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DI생활을 하는 동안 자긍심과 책임감이 높아졌다. DI를 지원한 것도 좀더 폭넓은 지식과 생각하는
기회를 통해 나라는 존재를 부각해 보고 싶어서였다.”(김건구 중사)

9년간의 군생활 중 DI 생활만 5년째인 김 중사에겐 특별히 기억에 남는 훈련병이 있다. 지금은 제1사단 수색대대 상병으로 복무하고
있는데, 김 중사는 천자봉 행군에서 허리가 아파 낙오될 처지가 된 그 훈련병의 완전군장을 대신 메고 함께 정상에 올랐다. 김 중사가 “너는
해냈다”며 군장을 돌려주자 훈련병은 말없이 뜨거운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그를 다시 조우한 것은 인터넷을 통해서였다. 그가 김 중사에게
‘싸이월드’의 ‘1촌(寸) 맺기’를 신청한 것. 해병대의 병과 부사관, 장교가 한마음으로 끈끈하게 맺어짐을 방증하는 단적인 예다.

이젠 해병대도 남성의 전유물은 아니다. 현재 복무 중인 여성 해병은 장교 37명, 부사관 29명(이상 2005년 임관예정자 포함). 이들의
병과는 포병·기갑을 제외한 전 부문에 걸쳐 있다. 앞으로 여군 수는 훨씬 늘어날 전망. 국방부 지침에 따라 해병대는 2020년까지 여군 장교
비율을 총 정원의 5.4%(104명), 2025년까지 여군 부사관 비율을 총 정원의 3.6%(143명)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2001년
임관한 여군 장교 1기(사관후보생 96기) 7명의 계급은 현재 대위다. 여군 부사관은 2003년 10명(부사관후보생 283기)이 처음 배출됐다.
하지만 해병대는 아직 여군 병을 모집하지 않고 있다.

‘GI Jane’과 ‘앙녀’

해병대 일각에선 여군의 존재에 대해 “남성보다 체력이 약해 해병대 교육훈련을 하향평준화할 우려가 있으면서도 근무평정이나 표창 면에선 앞서
좋은 보직을 차지하는 등 미 해병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남성 해병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런 우려를
불식하는 위풍당당한 여군 또한 없지 않다.

그중 한 명인 이지애(26·부사관후보생 283기) 하사는 교육훈련단 DI 72명 중 홍일점이다. 부사관교육대대 2중대 2소대 소속으로
해병대 사상 첫 여성 DI다. 부사관후보생으로 교육받을 당시 남자 동료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지난해 12월 DI교육 대상자로 선발돼 무사히
훈련을 마쳤다. 앳된 얼굴이다. 하지만 167cm의 키에 58kg의 다부진 몸, 100m를 14초에 주파하는 스피드, 여기에 전남 나주시청 소속
사이클 선수 출신, 스포츠센터 트레이너 팀장으로 활동한 경력을 자랑하는 ‘철녀(鐵女)’다. 별명은 ‘GI Jane.’

이 하사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중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인생의 전환점으로 해병대를 선택했다”며 “피교육생들에게 교육훈련에서 낙오되지
말고 동기들의 걸림돌이 되지 말라고 주문한다”고 말했다.

2002년 임관한 이미희(26·사관후보생 97기) 중위는 해병대의 첫 여성 훈련소대장. 교육훈련단 장교교육대대 훈련관으로 초임장교 양성
임무를 맡고 있다. 6월25일 임관할 사관후보생 100기 교육에 한창인 그는 “직업인으로서 군인을 동경해왔고, 대학시절부터 리더십을 발휘해보고
싶은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며 “한때 스튜어디스를 꿈꾸기도 했지만, 지금은 ‘해병을 만드는 해병’에 대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까지
복무연장을 신청했다.

이 중위의 아버지도 현역 해병대 원사다. 사관후보생들이 이 중위에게 붙인 별명은 ‘앙녀.’ 엄하고 독기 있는 그의 성격을 ‘앙증맞은
악녀(惡女)’로 표현한 것이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는 눈치다.

해병대 여군과 관련,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6·25전쟁 당시에도 여성 해병이 있었다는 사실. 1950년 8월30일 입대한 ‘해병 4기’
중엔 여자의용군 126명이 포함돼 있다. 이는 육군 여군 창설(1950년 9월5일)보다 6일 빠른 것. 전군 최초의 여군이다. 이들은 40여
일간 교육을 마치고 수료와 동시에 소위 2명, 병조장(상사) 4명, 1등병조 6명, 2등병조 15명 및 사병 등의 계급을 부여받고 해군본부와
통제부에 배치돼 1951년 7월경까지 근무했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소재가 파악된 61명은 ‘여(女)해병 전우회’를 구성해 활동 중이다. 당시 19세의 꽃다운 나이에 입대한
김일선(75·제주시 연동) 전우회장은 “그때 여군으로 입대한 사람들은 교사, 대학생, 중학생으로, 진해에서 신병기초훈련을 받은 뒤 대부분
통신병과로 복무했다”며 “현재 두 달에 한번 회원총회를 열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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