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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지형을 손금 보듯 꿰뚫고 있었다. 반복된 전투에 단련된 병사들은 ‘프로’였다. 야음을 틈탄 포 사격에 많은 병사를 잃은 지휘관은, 적의 취약지에 주공(主攻)을 집중하는 지략으로 판세를 뒤집을 마지막 기회를 노린다. 전선을 돌파하기 위한 마지막 결전, 이윽고 날이 밝아온다.강원도 인제의 육군 과학화훈련단에서는 매년 십수개의 대대가 들어와 이곳에 있는 전문대항군 대대와 자유 공방전을 벌인다. 두 부대가 맞붙어 작전을 짜고 서로를 속이며 사격과 폭격을 가한다. 총에 맞으면 그대로 실려 나가는 ‘실제의 싸움’. 산과 개울을 뛰어다니는 병사들은 죽음을 실감케 하는 전투를 치르며 ‘군인’이 된다. 대항군의 전적은 27전 전승. 대한민국의 모든 내로라하는 부대가 무릎을 꿇었다.3월28일 밤새도록 벌어진 이 무적의 ‘가상 북한군’과 ○○사단 대대의 전투훈련 과정을 현장에서 함께 뛰며 낱낱이 기록했다. 과연 ‘전쟁의 신’은 누구에게 미소지을 것인가.

● 개전 초기 대대장 전사는 다반사, 훈련군 60% 이상이 전사처리
● 종심(縱深) 깊은 배합전 구사해 훈련군 공격 무너뜨리는 대항군
● 실전과 똑같은 훈련… 아군 오인사격 희생자만 15%
● ‘소모 소위’는 빈말 아니다…엄청나게 높은 분대장·중대장 희생률
● “실력으로 불운 극복하고 노력으로 행운 만든다”
● “대항군 놈들 패주면 안 되겠습니까” 감정 격해진 훈련군
● 전사처리되면 ‘죽음의 의례’ 치러야

 

무릇 전투에서 공격은 ‘주공(主攻)’과 ‘조공(助攻)’으로 나눠 시작된다. 주공은 전선 돌파를 담당하고, 조공은 주공의 전선 돌파가 용이하도록 적을 엉뚱한 곳에 붙잡아두는 일을 한다. 가장 이상적인 공격은 아(我) 조공이 적(敵) 주력을 붙잡아두는 사이, 아 주공이 적 조력을 공격해 전선 돌파에 성공하는 것이다.

한국의 육군 부대는 대개 ‘3단위(일부는 4단위)’로 편제돼 있다. 3개 소대가 1개 중대이고, 3개 중대가 1개 대대, 3개 대대가 1개 연대, 3개 연대가 1개 사단, 3개 사단이 1개 군단을 이룬다. 따라서 공격은 ‘2대1제’로 펼치는 경우가 많다. 2의 세력으로 주공을, 1의 세력으로 조공을 만드는 것인데, 이는 가로로 ‘2대1제’를 구성한 경우다.

 

전투는 생물이다

‘2대1제’는 세로로도 구성한다. 전선 돌파는 대개 돌격과 초월(超越)로 구성된다. 적 방어선에 구멍을 내는 ‘돌격’은 가장 힘든 공격이므로 2개 부대가 담당한다. 구멍이 생기면 뒤에 있던 1개 ‘예비부대’가 돌격부대를 초월해 들어가 돌파구를 확장한다. 예비부대의 초월공격으로 구멍이 확대되면 지휘관은 후방에 있던 전차부대를 투입해 ‘봇물을 터뜨려’ 버리는데, 이렇게 되면 전투는 90% 이상 이긴 것이 된다.

아 주공의 공격을 받는 곳이 뚫릴 것 같으면, 적은 아 조공과 대치하고 있는 그들의 주력 일부를 빼내 위험한 곳으로 이동시키려 한다. 적이 이러한 기동을 감행해 구멍을 막아버리면 아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따라서 아 조공은 주공보다 훨씬 더 강력한 돌격을 반복해 적 주력을 붙잡아놓아야 한다. 그 사이 초월공격에 성공한 주공이 적 지휘부가 있는(또는 있다가 도주한) 고지를 점령하고, 그 다음 전투를 유리하게 치를 수 있는 ‘차후(此後) 목표점’을 점령한다.

이렇게 되면 아 조공과 대치하던 적 주력은 그들 지휘부와 통신이 두절돼 ‘목 잘린 닭’ 신세가 된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군대에서 우왕좌왕 각생(各生)을 도모하는 무리가 되는 것. 이러한 잔병(殘兵)을 ‘유후병력’이라고 하는데, 유후병력은 아 조공과 주공이 합세해 소탕한다. 그러나 ‘2대1제’니 ‘돌격과 초월’이니 하는 것은 교과서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전투는 살아 있는 ‘생물’인지라 2대1제를 고수해야 한다는 법이 없다.

‘생물’인 전투는 때론 조공과 주공을 바꿔놓기도 한다. 기대했던 주공이 돌파를 못하고 헤매고 있는데, ‘거짓 돌격’을 맡은 조공이 전선을 뚫는 것이다. 예비부대가 없는 조공으로서는 초월공격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승리감은 초인(超人)을 만든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상황이지만, 조공 병사들은 승리감에 젖어 성난 파도처럼 밀고들어가 깃발을 꽂아버리는 것이다. 역사는 조공이 주공을 앞지른 사례를 종종 보여준다

 

어둠이 깔린 숲 속에서 은밀하게 작전회의를 하는 훈련군 대대장 캠프.

‘전진(前進)’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육군 1사단은 ‘평양 입성 선봉부대’로 유명하다. 1사단은 미군 정예사단과 벌인 경쟁에서 기막힌 ‘역전승’을 거둠으로써 이 타이틀을 얻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서울을 탈환한 유엔군은 1950년 10월3일 0시부로 38선을 넘는 무제한 북진 작전을 승인했다. 이 작전을 위해 압록-두만강까지 진격할 주공과 조공을 선발했는데, 평안북도 끝까지 진격할 주공은 미 8군이, 함경북도 북단까지 밀고 갈 조공은 미 10군단이 맡았다.

주공을 맡은 미 8군은 평양을 점령하고 북진할 주공으로 미 1군단을 정하고, 주공의 평양 점령을 돕기 위해 적을 엉뚱한 곳에 붙잡아놓을 조공 임무는 한국군 2군단에 맡겼다. 주공을 맡은 밀번 미 1군단장은 다시 평양 돌격을 담당할 주공으로 기동력이 좋은 미 1기병사단을, 목표점은 같지만 적을 붙잡아놓는 조공으로 미 24사단을, 예비부대로 영연방 27여단을, 그리고 잔병 소탕에나 참여하는 최후 예비부대로 백선엽 준장이 이끄는 한국군 1사단을 지명했다.

그러자 백 준장이 “내 고향이 평양이라 평양 공격 루트는 내가 가장 잘 안다. 평양 공격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다”며 거칠게 항의해, 밀번 1군단장은 미 24사단과 한국군 1사단의 임무를 바꿔주었다. 유후병력 소탕전에나 참여해야 할 한국군 1사단이 일약 조공이 된 것. 밀번 1군단장은, 주공인 미 1기병사단은 ‘경의선’ 상에 있는 개성-사리원-황주를 거쳐 최단거리로 평양을 공격하고 한국군 1사단은 신계-수안을 거쳐 평양을 공략하도록 했다.

이러한 재조정 때문에 미 1군단의 출동은 10군단보다 늦어졌다. 10월7일 주공인 미 1기병사단이 38선을 넘고, 조공인 한국군 1사단은 10월11일에야 38선 너머로 북진할 수 있었다. 백선엽 리더십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투에서 미 육군의 패튼 장군은 전차와 보병부대를 혼합해 돌진하는 전법으로 독일 지역을 가장 깊숙이 파고들었다. 미 1기병사단은 유명한 기동부대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백 사단장은 공격 개시 전 밀번 1군단장을 졸라 미군 전차 10대(1개 전차중대)를 지원받았다. 그리고 한국군 보병과 미군 전차를 섞어 함께 돌격하는 ‘패튼 전법’을 구사해 재빠른 돌격에 나섰다. 나흘이나 늦게 출동했지만 한국군 1사단은 곧 미 1기병사단과 거의 비슷한 깊이에 전선을 만들었다.

 

주공보다 빨랐던 조공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군 1사단 병사들이 흥분했다. 이들은 미 1기병사단보다 먼저 평양에 도달하자며 “전진, 전진!”을 외쳤고, 그 기운에 전염된 미 전차중대원들도 덩달아 “위 고우(We go), 위 고우!”를 외치면서 최선을 다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한국군 1사단이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 육군 최고의 기동부대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미 1기병사단도 진격 속도를 높였다.

그로 인해 주공과 조공의 역할 구분이 모호해지고, 미 1군단 사령부는 어느 부대가 먼저 평양에 도착하는지를 판단하는 ‘심판관’ 처지가 되었다. 미 1군단 사령부는 정찰기를 띄워 양쪽의 진격 속도를 살피며 돌격을 독려했다. 피를 말리는 듯한 이 경쟁은 10월19일 한국군 1사단이 주공과 조공의 합류점인 대동교 앞 선교리에 40분 먼저 도착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러자 한국군 1사단에 배속된 미 전차부대원들은 기쁨에 들떠 ‘Welcome 1st Cav. Division - from 1st ROK Division Paik: 한국군 1사단장인 백선엽은 미 1기병사단의 도착을 환영한다’고 쓴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미 1기병사단이 도착하자 종군 사진기자단이 이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셔터를 누름으로써, 보병으로 편제된 한국 사단이 미국의 최정예 기동사단을 이긴 확실한 증거가 만들어졌다. 이 사건으로 한국군 1사단은 ‘전진’이라는 별명과 ‘평양 입성 선봉부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렇듯 한국군 1사단이 평양에 먼저 도착한 것은 조공이 주공을 앞지른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현실 전투에서 이러한 기적은 자주 발견되지 않는다.

 

제1부 첫째 날 - 벼락이 떨어져도 전투는 한다

이 정도의 배경지식을 갖고 3월28일 강원도 인제에 있는 육군 과학화훈련단(약칭 과훈단)을 찾아갔다. KCTC(Korea Combat Training Center)라고도 하는 이곳엔 매년 17~19개의 대대(훈련군)가 들어와 이곳의 전문대항군(대항군) 대대와 자유 공방전을 벌인다. 훈련군은 평소 자기 편제 부대에다 유사시 연대와 사단으로부터 지원받거나 배속 부대를 이끌고 들어온다.

무기는 이 부대가 사용해오던 것에 마일즈(MILES·Multiple Integrated Laser Engagement System·다중통합레이저 교전체계)’ 장비를 부착해 사용한다. 훈련에 들어간 병사들은 공포탄을 제공받는다. 따라서 소총 방아쇠를 당기면 요란한 폭음과 함께 공포탄이 터지고, 동시에 소총에 부착한 마일즈 유닛(unit)에서 레이저가 발사된다. 이 레이저를 맞은 상대는 그의 몸에 부착된 마일즈 유닛이 “삐삐~” 하고 울리며 유닛에 ‘전사’ ‘중상’ ‘경상’ 가운데 어느 하나가 표시된다.

중상이나 전사로 표시된 병사의 총은 더 이상 격발되지 않는다. 이러한 병사는 헬멧을 벗고 도로로 나와야 한다. 중상자는 2시간 이내에 후송되지 못하면 전사자로 처리되는데, 전사한 병사들은 훈련장을 빠져나와 ‘죽음의 의식’을 치러야 한다. 전사자의 유해는 화장해 현충원에 모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단급 이상 부대에는 이러한 장례를 전문으로 하는 ‘영현(英顯)중대’가 있다. 전장에 나온 영현중대 요원들은 전사자의 유해를 영현 백에 담아간다.

헬멧을 벗은 채 훈련장을 이탈한 전사자들은 영현중대 요원들이 펼쳐놓은 영현 백 안에 스스로 들어가 누워야 한다. 낯선 영현 백 안으로 몸을 넣을 때까지는 어색한 기분만 든다고 한다. 그런데 백의 지퍼가 올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됐을 때 비로소 병사들은 ‘내가 죽으면 이렇게 처리되는구나’ 하며 생사(生死)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과훈단에서는 주간 공격과 주간 방어, 야간 공격과 야간 방어 네 번의 전투를 치른다. 한 차례의 전투가 끝나고 새 전투가 준비되면 전사자들은 부활한다. 이때 죽음의 의식을 치러본 병사들은 확실히 생존의지와 전투 집중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훈련군 대대와 싸워주는 대항군 대대는 여간 강력하지 않다. 이 부대는 2005년 이 훈련을 시작한 이래 27번을 싸워 27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주야간 공방전이라는 네 차례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는 기록을 27번이나 반복해온 것이다. 지난해에는 ‘전투 프로’인 육군 특전사 가운데서도 최정예로 꼽히는 3특전여단 예하 대대와 대한민국 유일의 ‘상륙군’ 부대인 해병대 1사단 예하 대대를 꺾는 기염을 토했다.

 

군복 색깔이 다른 부대의 배합전

대항군은 군복 색깔이 약간 다를 뿐 한국군과 똑같은 장비와 무기를 사용한다. 그러나 차이는 있다. 북한군은 AK(아카보) 소총을 쓰고 한국군은 M-16을 개량한 K-2 소총을 사용한다. 대항군 병사들은 K-2 소총을 사용하나, 이들이 쏜 총알(레이저)을 맞은 훈련군 병사의 마일즈 유닛에는 ‘AK’가 뜬다. 반면 훈련군이 쏜 총알을 맞으면 ‘K-2’가 나타난다.

대항군은 정보사령부가 북한군 귀순자들을 통해 입수한 북한군 전술을 활용해 전투한다. 북한군 전술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피아(彼我)가 맞붙은 전선에서 크게 싸우는 ‘대규모 전투’와 적 후방으로 은밀하게 집어넣은 침투부대로 하여금 상대 후방을 교란하며 싸우는 ‘소규모 전투’를 함께 치르는 ‘배합전(配合戰)’이다. 6·25전쟁 초기 북한군은 이 전술로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한국군 1사단에 평양 점령 기회를 넘겨주었던 미 육군 24사단은 6·25전쟁에 가장 먼저 참여한 미군 사단으로 유명하다. 1950년 7월13일쯤 이 부대는 대전 방어에 나섰다가 사단장인 딘 소장이 인민군 6사단에 생포되는 처절한 패배를 맛보았다. 미 24사단을 공격한 것은 인민군 3사단과 4사단이었다. 이들은 피난민 속에 집어넣은 침투조로 24사단 후방을 교란하며 동시에 정면으로 미 24사단을 밀어붙이는 배합전을 구사했다.

전투가 시작되자 미 24사단 병사들은 적과 맞붙은 정면은 물론이고 후방에서도 총소리가 들려오자 ‘인민군이 24사단 방어선을 돌파한 것’으로 착각하고 각생을 도모해 모든 방어선을 무너뜨렸다. 사단장인 딘 소장도 후퇴했다. 그런데 한반도 지리에 어두운 운전병이 부산 쪽으로 지프를 몬다는 것이 호남 쪽으로 몰아버렸다. 그 바람에 딘 소장은 한 달간 호남지역에 숨어 있다가 그 지역을 장악한 인민군 6사단에 붙잡혀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포로로 있었다.

이러한 전술을 구사하는 대항군이 24전승을 기록하자 일각에서는 ‘북한군 전술이 한국군보다 더 좋아서 그런 결과를 낳은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다수의 군 관계자는 “북한군 전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대항군이 워낙 잘하기 때문이다. 전술에는 우열이 없다. 차이는 전술을 얼마나 잘 구사하느냐에 있다”고 반론을 펼친다.

과훈단에 입소하는 훈련군은 GOP 경계나 해안경계를 하던 상비사단들이다. 팔팔한 병사들로 구성된 정예부대들인데 왜 이들은 대항군에 나가떨어지는 것일까. 그 이유를 찾는 것이 과훈단 취재에 나선 목적이었다.

 

3분의 1 전력으로 방어 나선 대항군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철조망을 치는 대항군 병사들.

과훈단의 중추는 EXCON(Exercise Control Center)으로 불리는 ‘훈련통제본부’다. 대항군과 훈련군은 그들끼리만 통하는 주파수로 무전을 주고받지만, 본부는 양쪽 무선을 다 듣는다. 대항군과 훈련군 부대원이 팔뚝과 헬멧에 붙이고 있는 마일즈 유닛은 30초마다 제 위치를 보고하므로, 본부는 병사 개개인의 동선까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본부는 훈련군과 대항군 부대에 ‘관찰통제관’을 내보낸다. 이들은 본부의 연락을 받기에 양쪽 작전이 무엇이고 어디로 이동해 어디쯤에서 교전하게 될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고 부대의 움직임만 지켜보는데, 일부는 비디오카메라로 그 부대의 움직임을 촬영한다. 훈련이 끝나면 관찰통제관이 작성한 관찰보고서와 본부에서 생산된 자료가 종합 분석돼 대항군과 훈련군에 전달되어, 각자의 과오를 깨닫게 해준다.

 

마침 취재진은 훈련군의 주간(晝間) 공격 하루 전날 과훈단에 도착했다. 대항군과 맞붙을 훈련군은 서울 서쪽을 방어하는 ○○사단이었다. 기자는 전승을 기록하는 대항군을 꺾기 위해 ○○사단이 최정예 병사를 뽑아 입소시켰을 수도 있다고 의심했으나, 확인 결과 그렇지는 않았다. 상비사단은 대개 2개 연대를 경계에 투입하고 1개 연대는 빼내 정비와 훈련을 반복하는 체제로 운영한다.

○○사단 역시 이런 체제로 운영하므로 임무지를 빠져나온 연대 가운데 한 개 대대를 과훈단에 보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항군이 강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므로 입소하기 전 이 대대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반복했다고 한다.

양쪽이 전투 준비에 들어간 훈련장은 해발 800~1000m의 산들이 늘어선 가로 16㎞, 세로 14㎞, 총면적 3570만평의 산악지역이다. 그곳의 공기는 훈련통제본부가 있는 곳보다 확실히 서늘했다. 훈련군은 이 훈련장의 동쪽에 포진해 있다가 기동을 시작해 대항군이 방어선을 설정해놓은 곳을 돌파해 목표점인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

그런데 이 훈련은 사단 또는 군단이 총 지휘하는 작전의 일부인 것으로 가정해 펼치기 때문에, 훈련군 대대에 배당된 돌파 지역 너비는 약 2.5㎞였다. 2.5㎞ 좌우엔 다른 대대가 전선 돌파를 시도하는 것으로 가정돼 있으므로, 훈련군은 자기가 담당하는 2.5㎞만 뚫어야 한다. 2.5㎞ 바깥을 돌아 대항군 진지를 돌파한다면 이는 명령을 어기고 평양으로 들어온 7사단처럼 ‘명령 불복종’을 한 것이 된다. 자칫하면 아군끼리 교전하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공격군은 자기를 노출하는 기동을 하면서 싸워야 하지만, 방어군은 지형지물을 이용해 몸을 숨긴 채 싸운다. 따라서 공자(攻者)는 방자(防者)보다 세 배 이상의 전력을 가져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은 과훈장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사단 대대는 대대 전 병력은 물론이고 연대와 사단에서 배속받은 병력까지 모두 투입하지만, 대항군은 3분의 1인 250여 명만 방어전에 투입하는 것이다.

250명으로 2.5㎞를 지키려면 10m마다 한 명씩 세워놓아야 한다. 좌우로 10m 떨어진 곳에 동료가 있다면 방어선에 투입된 병사는 안정감을 갖기 힘들다. 동료의 ‘보는 눈’이 없으면 병사는 두려운 마음에 각생을 위해 도주할 수가 있다. 취재진은 대항군 대대가 어떻게 방어선을 구축하는지부터 살펴보았다.

대항군 대대가 방어선을 치고 있는 곳을 찾아나선 것은 오후 3시30분쯤. 그러잖아도 꾸물거리던 하늘이 누렇게 어두워지더니 뭔가를 퍼붓기 시작했다. 타고 온 지프 천막 지붕에서 콩 볶는 소리가 난다. 차를 세우고 문을 열어보니 쌀알만한 우박이 쏟아지고 있었다. 산지 이곳저곳에서는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광풍(狂風)이 일어나 지프 안으로 밀려왔다. 스산하고 불안정한 느낌…,.

10여 분 후 우박은 사라지고 진눈깨비가 내리더니 이윽고 찬비가 쏟아졌다. 번개도 쳤다. 적란운이 낮은 곳에 있는지 금방 천둥소리가 뒤따라왔다. 높은 산 어디에선가 벼락이 떨어졌는지 “빠지직” 소리도 들려왔다. 이런 날 무선 통신을 하다보면 통신 안테나에 번개가 떨어져 인명사고가 날 수 있다. 아니나다를까. 훈련통제본부는 대항군과 훈련군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로 “낙뢰 경보가 내려졌다. 대항군과 훈련군을 포함한 모든 관계자는 무전기를 꺼라”는 지시를 보내왔다.

어수선한 분위기. 기자는 “취재 날짜를 잘못 잡았네. 훈련을 못하겠군…”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동행한 관찰통제관이 “무슨 말씀입니까. 날씨 때문에 훈련을 연기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이게 무슨 야구 시합도 아니고 날씨가 나빠졌다고 전쟁을 중단할 수는 없지요”라고 말했다.

 

인터뷰 피한 대항군 대대장

살포지뢰를 설치한 후 철사를 연결하는 대항군. 실전에서는 살포지뢰에서 자동으로 실이 뻗어 나온다.

그의 말에 용기를 얻어 다시 대항군을 찾아나섰다. 그런데 본부로부터 연락을 받는 관찰통제관도 대략적인 방어선 설치지역만 알 뿐 정확한 지점을 알지 못했다. 그는 대항군이 주고받은 통신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여기쯤 방어선을 구축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2.4㎞ 작전구역의 최북단에 해당하는 구석진 도로에서 군복색이 다른 병사들(대항군)을 만났다. 양쪽으로 산이 있는 가운데 U자 형태로 잘록하게 들어간 곳에 도로와 작은 개울이 흐르는 지형이었다.

○○사단 병사들이 산을 타고 온다면 순식간에 도로와 개울을 건너 반대편 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목 지점’이었다. 대항군은 이를 잘 알고 있는 듯 긴 쇠막대를 들고 나와 도로에 박고, 그 쇠막대 사이로 철조망을 설치했다. 입고 간 사복 위에 과훈단에서 빌린 야전상의와 우의를 걸치고 지프에서 나와보니, 금세 손가락이 곱아들고 발끝이 시려온다. 병사들이 입은 우의 위로는 얇은 얼음발이 얽히기 시작했다.

첫눈에는 철조망 방어선이 매우 엉성해 보였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니 보통 방어선이 아니었다. 사람은 절대 이 철조망을 넘어갈 수 없다. 철조망을 절단해 한쪽으로 밀쳐놓거나 철조망 위에 판자나 두꺼운 천을 깐 다음에야 이 방어망을 통과할 수 있다. 대항군 병사들은 익숙한 솜씨로 철조망을 설치했는데, 공수가 바뀌면 그때는 훈련군이 철조망을 깔아야 한다.

수백m 길이로 설치한 철조망 방어선에서 ○○사단 대대가 절단하거나 판자를 올려놓을 수 있는 지점은 한두 군데에 불과할 것이다. 반대편 산에 포진한 대항군은 그곳만 집중 공격할 것이니 철조망을 개척하더라도 ○○사단 대대원들이 반대편 산으로 뛰어오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관찰통제관은 “훈련이 끝나면 이 철조망을 걷어버리고 다음 훈련 때 새로 설치한다”고 말했다.

그때 대항군 대대장이 나타났다. 대항군 대대장은 북한군 군관처럼 거친 인상일 것으로 상상했는데, 뜻밖에도 그는 안경을 쓴 똘망똘망한 인상의 사내였다. 대기업에 근무한다 해도 전혀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엘리트풍 장교였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꿰고 있는 듯 쉬지 않고 지시를 내리며 기자를 맞았다.

 

그는 “지금은 우리가 일을 해야 하니 다음에 이야기하자”는 말로 가볍게 인터뷰를 피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매끄러운 사람. 그는 오늘밤부터 시작되는 전투를 의식하고 있었다. 전승을 기록해온 부대의 책임자로서는 이번 전투도 이겨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것이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카메라의 방수능력을 자신할 수 없어 지프를 타고 대항군이 다음 방어선을 치는 곳으로 이동했다.

과훈단 훈련장을 만들기 전 분교(分校)와 마을이 있던 공지로 내려왔다. 공지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도로에는 또 다른 대항군 세력이 나와 대인지뢰를 설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땅에 묻는 게 아니라 땅 위에 꽂기만 했다. 훈련이기 때문에 꽂는 것일까?

예전의 대인지뢰는 밟아야만 터지기 때문에 땅에 묻었다. 지뢰 매설 작업은 오랜 시간을 요구한다. 전투는 분초를 다툰다. 따라서 포탄이 떨어지는 위험한 땅에서 한가롭게 지뢰를 매설할 여유가 없다. 매설하다 실수하면 오히려 아군이 희생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요즘에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지뢰를 설치한다. 야포나 지뢰투척기로 발사해 살포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살포지뢰다.

매설지뢰가 하늘로 던져졌다면 땅에 떨어지는 순간 폭발한다. 그러나 살포지뢰는 터지지 않는다. 땅에 떨어지는 순간 이 지뢰에서는 가느다란 실이 나와 산지사방으로 뻗어가는데, 살포지뢰는 이 실을 건드려야 폭발한다. 대인용 살포지뢰의 실을 건드리면 인근에 있던 사람의 발목 정도가 날아간다(발목 지뢰). 대전차 지뢰라면 30t이 넘는 전차도 뒤집을 수 있다.

살포지뢰는 수류탄보다 크므로 도로나 운동장에 떨어져 있으면 바로 눈에 띈다. 그러나 이 지뢰에서 나온 실은 가늘기 때문에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지뢰가 풀섶이나 밭에 떨어진다면 실은 더더욱 보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지뢰가 보이면 진격하던 부대는 급제동을 건다. 멈춰 선 적을 향해 아군은 그 뒤와 좌우로도 또 한 번 살포지뢰를 발사해 포위해버린다.

매설지뢰는 30~40년간 작동되므로 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아군도 이곳을 뚫고 나갈 방법이 없다. 그러나 살포지뢰는 살포 직전에 입력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작동불능 상태가 된다. 일정시간이란 살포지뢰로 적을 포위해놓은 아군이 적을 공격해 들어갈 때까지를 뜻한다. 적은 살포지뢰가 무력해지는 시기를 몰라 꼼짝못하고 있겠지만, 살포지뢰 무능화 시간을 아는 아군은 그때를 택해 공격에 들어가 적군을 궤멸시키는 것이다.

 

영악한 살포지뢰

야음을 틈타 계곡으로 침투하는 훈련군 수색소대.

훈련에서는 살포지뢰를 실제로 살포할 수 없으므로 대항군은 박아넣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이 지뢰에서부터 사방으로 가느다란 철사를 설치했다. 이 철사를 건드리면 꽂아둔 지뢰에서는 ‘퐁’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화약이 터진다. 인근에 있는 병사의 마일즈 유닛에는 ‘중상을 입었다’는 표시가 뜬다.

이렇게 얄미운 ‘지능형 지뢰’ 지대를 뚫으려면 훈련군은 ‘미클릭(MICLIC)’이라는 지뢰지대 개척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미클릭은 화약을 ‘줄줄이 소시지’처럼 연결한 긴 줄을 발사하는 장비다. 발사된 이 줄이 지뢰지대에 떨어지면 훈련군은 줄에 달려 있는 화약을 일제히 터뜨리는데, 이때 그 주변에 있던 살포지뢰가 함께 터짐으로써 통로가 열린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개척한 통로도 철조망을 절단한 것처럼 특정부분만 연 것일 뿐이다. 대항군은 이곳을 향해 화력을 퍼부을 것이 분명하므로, 훈련군은 통로가 개척돼도 섣불리 병력을 투입할 수가 없다. 철조망과 살포지뢰는 의외로 강력한 방어망이다.

대인지뢰 살포지역을 지나 더 남쪽으로 내려오자 소수의 대항군 병사가 도로에 대화구(大火口)를 만들고 있었다. 대화구는 상대 전차의 진격을 막기 위해 도로를 움푹 파놓은 구덩이다. 대항군과 훈련군은 각각 사단으로부터 1개의 전차소대(4대)를 배속받았다. 따라서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훈련군은 전차를 앞세워 전선 돌파를 시도할 수가 있으므로, 이 전차 공격을 막기 위해 대화구 설치라는 방어술을 펼치는 것이다.

전차를 앞세운 돌파가 드문 것은 양쪽 보병부대가 갖고 다니는 ‘로우(LAW·Light Anti-tank Weapon)’와 90㎜ 무반동총 같은 대(對)전차화기의 위력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 화기는 수 만원짜리 탄약을 발사해 50억원이 넘는 전차를 무력화할 수 있다. 따라서 보병과 전차가 동시에 돌진하는 ‘보전협진(步戰協進)’은 적이 제대로 된 방어망을 구축하지 못한 곳에서 펼쳐야 효과가 크다.

대항군은 훈련군이 보전협진 전술을 구사할 것에 대비해 대화구를 만들었지만, 그러나 멀쩡한 도로에 진짜로 대화구를 만들 수는 없어서 대화구를 만들었다는 표시만 해놓았다. 대항군은 반격을 위해서인지 간격을 두고 철조망과 대인지뢰 대화구를 설치했다. 훈련군으로서는 빈틈을 찾아내지 못하면 쉽게 방어망을 돌파하지 못할 것이다.

그 남쪽으로 내려오자 북쪽에서 내려온 개울이 반대편 계곡에서 나온 개울과 만나 자갈밭 여울을 만든 드넓은 개활지가 있었다. 그동안 내린 비로 개울물은 제법 불어나 있었다. 개활지 옆에는 역시 도로가 나 있는데, 이 도로는 온통 흙으로 된 꽤 가파른 절개면을 통해 산과 이어져 있었다. 산을 타고 온 훈련군은 몸을 숨길 곳이 없는 절개면을 내려와 도로를 건너 개울가로 뛰어와야 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개울에서는 갈대나 바위에 의존해 몸을 숨기고 전진한다. 그리고 ‘1참호선’이라고 하는 대항군의 주 방어선을 돌파해 목표점으로 돌진해야 한다. 대항군은 전방에 철조망 등 방어시설을 설치하고 그 후방에 1참호선이라고 하는 방어진지를 구축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개활지에서는 대항군을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대항군이 사용할 수 있는 방어장비의 수량에는 제한이 있다. 북쪽에 방어장비를 깔았다면 남쪽에는 깔 수 없다. 이러한 제한은 훈련군이 방어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방어장비를 깔지 못한 곳에서는 병력만으로 방어해야 한다. 대항군 대대장은 개활지 쪽을 방어망을 설치하지 않고 1참호선 병력만으로 지키는 곳으로 설정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대항군 대대장은 철조망과 지뢰를 설치한 곳에는 적은 병력을 배치하고, 개활지 뒤의 제1참호선에 많은 병력을 배치하는 것이 상식이다.

전투와 경기가 다른 것은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없다는 점이다. 전투는 내일 시작해도 정찰은 오늘 시작할 수 있다. 훈련군 대대장은 정찰조를 보내 대항군이 방어선을 구축하는 정보를 획득했을 것이다. 정찰조가 정확한 정보를 물어왔다면 그는 철조망-지뢰 지대에는 대항군이 적고, 개활지 쪽에 많이 배치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철조망-지뢰 지역에 주공을 투입하고 개활지 쪽으로 조공을 넣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대항군 대대장도 똑같이 할 수 있다. 대항군 대대장은 역으로 철조망-지뢰 지대에 주력부대를 배치하고 개활지에 소수 병력을 배치하는 꾀를 쓸 수도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복불복(福不福), 승부는 전술이 아니라 지휘관의 운(運)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그래서 평범한 지휘관보다는 용장(勇將)이, 용장보다는 지장(智將)이, 지장보다는 덕장(德將)이, 덕장보다는 복장(福將)이 더 낫다고 하는 것인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운 좋은 사람을 당할 재간이 없다. 오늘밤에는 누가 대운을 잡는 복장이 될 것인가.

다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육군이 전군에서 가장 운이 좋은 중령을 뽑아 대항군 대대장에 임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대항군은 연전연승을 해왔을까. 해답을 찾아야 할 문제는 많았다.

 

들뜬 분위기의 훈련군

대항군의 움직임을 지켜본 취재진은 지프를 타고 몇 개 산등성이 뒤쪽에 있는 훈련군 캠프를 찾아갔다. 그곳도 부산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분위기가 약간 달랐다. 대항군은 여러 차례 같은 훈련을 반복했기 때문인지 일사불란하다는 느낌을 주는 데 비해, 훈련군 캠프는 다소 들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주둔지를 떠나 낯선 곳에 왔다는 사실, 오늘 밤 진짜 훈련이 시작된다는 기대감에 병사들은 긴장해 있는 것 같았다.

공격부대는 적 정찰조의 침투를 막기 위해 경계병만 세울 뿐 대항군처럼 방어망을 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도로로부터 적절히 시선을 가려주는 계곡에 모여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곳을 찾아가보니 대대장이 있는 본부라고 했다.

○○사단 대대는 밥과 국을 따로 지을 수 있는 트럭을 갖고 있었다. 현명한 적이라면 상대의 조리용 트럭을 반드시 파괴할 것이다. 이 트럭이 파괴되면 ○○사단 대대는 대형 버너에 큰 솥을 올려놓고 ‘국밥’을 만들어 병사들에게 제공한다. 이 버너도 파괴되면 병사들은 각자 지참해간 전투식량을 뜯어 먹는다. 전투식량은 ‘햇반’과 비슷해서 데우기만 하면 훌륭한 야전식사가 된다. 그것마저 떨어지면 마지막 전투식량인 건빵이 있다.

대대장 캠프는 숲 속 깊숙한 곳에 있었다. 그의 캠프로 올라가는 길은 내리는 비로 진창이 돼 있었다. 길 좌우엔 연대에서 지원해준 4.2인치 박격포를 실은 K-531 전투차가 늘어서 있고, 병사들은 진창에 빠져가며 탄약을 옮기고 있었다.

대대장 캠프로 올라가는 길에 눈길을 끈 것은 전화선이었다. 군에서는 무선전화를 사용하지만 전화기에서부터 안테나까지는 유선을 놓는다. 야음을 틈타 잠입해온 적 침투조는 전화선에 주목할 것이다. 전화선이 있는 곳에는 대개 지휘관이 있으므로, 이들은 지체하지 않고 포 사격을 유도한다. 따라서 전화선을 설치할 때는 흙속에 파묻어야 한다. ○○사단 대대도 애초에는 전화선을 묻은 것 같았다. 그러나 추적추적 내린 비로 길이 진창이 되면서 전화선이 밖으로 드러나버렸다.

대대장은 한창 작전회의를 하고 있어 역시 인터뷰가 불가능했다.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그래서 더욱 어두운 숲 속의 텐트에서 작전회의를 하는 그의 모습을 담으려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취재 욕심에 플래시를 떠뜨렸지만, 이 불빛을 대항군 정찰조가 봤다면 그는 지체하지 않고 포 사격을 유도할 것이라는 걱정도 들었다.

○○사단 대대도 야음을 이용해 대항군 지역에 정찰조를 투입한다. 이 임무는 연대에서 배속해준 수색소대가 맡는다. 이들은 대대 캠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아주 컴컴한 개울가에 은신해 있었다. 관찰통제관의 도움을 받아 그들을 찾아 계곡으로 내려갔다. 밤안개가 피어오르는 어둠 속에 위장약을 칠한 젊은이들이 숨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헬멧을 쓰고 있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즉각 “우리는 적과 싸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적과의 조우를 최대한 회피하며 침투하는 것이 목표다. 침투한 다음에는 적의 전략시설이나 거점을 발견해 아군의 포 사격을 유도한다. 적과 싸울 필요가 없으니 헬멧을 쓰고 갈 이유가 없다. 헬멧을 쓰고 가면 덜컹거리는 소리 때문에 오히려 발각될 가능성만 높아진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사단 대대를 돌아보고 나니 어느덧 오후 8시가 넘었다. 저녁을 먹지 못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올라왔다. 동행한 관찰통제관에게 “이왕이면 군대 식량을 축내기로 하자”고 제의하자, 그는 그래도 낯익은 사람이 많은 대항군 부대 쪽으로 지프를 몰았다. 대항군에 보급품을 제공하는 후방보급소를 찾아간 것인데, 그곳에서 만난 노 부사관은 “식사가 끝나 밥이 없다”며 햇반 형태의 전투식량을 내주었다. 기자는 순수 백반을, 사진기자는 볶음밥을 집었다.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관찰통제관이 ○○사단 대대의 공격은 내일 오전 8시에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양측은 어둠이 내리면서부터 바로 작전에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오전 8시 공격이란 ‘오전 8시에 대항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라는 것’이므로, 훈련군은 그 전에 부대 기동을 시작한다. 본격적인 부대 기동에 앞서 양쪽은 타격 목표물을 확인하기 위해 침투조를 투입한다.

침투조는 포 사격 유도가 주임무이므로 침투조가 투입된 시각부터 양쪽은 포 사격에 들어간다. 공격을 준비하는 쪽에서는 상대의 방어력을 약화하기 위해 ‘공격준비 사격’을 하고, 방어를 하는 쪽은 상대의 공격력을 약화하는 ‘공격준비파괴사격’을 한다. ○○사단 대대는 이러한 사격을 뚫고 내일 오전 8시 대항군 제1참호선을 돌파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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