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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수의 부활


“어디선가 탕 탕 총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적은 보이지 않고 아군의 사상자는 늘어만 갔다.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바짝 엎드려야 했다.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해 더럭 두려움마저 느꼈다. 아마도 실제 전장이 이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원도 인제·홍천에 위치한 육군 과학화훈련장에서 지난해 훈련부대로 참가, 전투를 벌였던 한 일선부대 장병이 털어놓은 전투훈련 소감이다.

“정확히 조준 사격을 할 때마다 상대는 하나 둘 쓰러졌다. 지휘관(자)과 공용화기 사수를 제압하자 순식간에 소대 병력이 우왕좌왕 무너졌다. 그들이 무작정 휘두르는 사격은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다만 어디선가 나를 노리고 있을 상대 저격수만이 위협이 될 뿐이었다.”

중대에 2명씩 편제돼 있는 전문 대항군 대대 저격수(습격조)로서 상대 부대당 평균 수십 명씩 저격한 한 장병의 말이다.

저격수가 육군 일선부대에서 부활했다. 지난해부터 육군의 전 야전부대에 소대당 1명씩 저격수가 잠정 편성됐고, 간접 전장 체험을 할 수 있는 육군 과학화훈련장에 훈련부대의 일원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산악지역 소부대전투에서 저격수의 위력은 지휘관의 운용과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의 차이를 보였다. 특히 K2소총에 저격용 스코프를 달았을 경우 저격수의 존재 자체는 소부대전투의 흐름을 좌우할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육군의 일선부대에는 저격수가 편성돼 있지만 전문 저격용 소총과 스코프가 아직 보급되지 않은 초기 상태다. 반면 해병대에는 수년 전부터 사·여단급은 물론 연대와 헌병특경대까지 전문 저격수를 양성, 체계화되어 있다. 장비 또한 전문 저격 소총인 독일제 SSG-3000과 SSG-69이며, 체계적인 교육과정으로 인해 해양경찰특공대에서도 위탁교육을 받을 만큼 한국군을 대표하는 저격수의 산실로 명성이 높다.

저격수를 지칭하는 영어 단어는 스나이퍼(Sniper)다. 스나이퍼는 18세기 도요새(Snipe) 사냥에서 나온 말이다. 작고 빨라 조준하기 어려운 표적을 사격한다는 의미로 처음 사용됐다고 한다.

훈련받은 사수가 장거리 사격용으로 전투에서 활약한 것도 이미 19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넬슨 장군이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전사한 것도 적의 저격수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저격수의 전성시대가 열린다. 소련의 핀란드 침공 때 핀란드군의 시모 하이하는 조준경을 장착한 M28소총으로 무려 542명의 소련 병사를 사살해 저격수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6·25전쟁에서도 중공군과 북한군이 저격수를 대량 운용했다. 베트남전쟁에서도 공산 베트민군은 5개 대대마다 1개 저격소대를 배속·운용할 정도로 저격수 운용에 관심이 많았다. 1966년 대위 계급을 달고 백마부대 제28연대 소총 중대장으로 베트남전에 파병됐던 박종식(육사15기) 예비역 소장도 그의 저서 ‘보병 중대장’을 통해 베트콩이 아군 지휘관을 노리고 저격수를 운용한 사례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저격수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으나 베트남전을 통해 저격수의 중요성을 인식, 해병대를 중심으로 저격수 운용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수많은 전쟁에서 저격수들은 탁월한 명중률을 과시해 나름의 존재 가치와 효용성을 입증해 왔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적 1명을 사살하는 데 들어간 탄약은 7000발,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2만5000발, 베트남전에서는 5만 발이 소요됐다. 하지만 베트남전에서 저격수들이 적 1명을 저격하는 데 사용한 평균 탄약은 1.7발이었다.

저격수의 효과는 단순히 적을 사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2004년 11월 팔루자에서의 전례에서 보듯이 적 저격수에게 공격당할 경우 아군 보병들은 행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적 저격수가 나를 반드시 죽일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해병대 교육훈련단의 저격수 교관 김문우(53) 원사는 “저격수들은 지휘관이나 포병관측장교·통신병 등 전장에서 쉽게 대체할 수 없는 핵심 요원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아 인원 1명 손실 이상의 엄청난 파급 효과를 미친다”며 “나아가 병력 집결지나 군수물자 집적소를 포착, 추가적인 화력지원을 유도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기 때문에 전장에서의 역할은 엄청나다”고 말했다.

2007.02.22 글=정호영·김병륜·사진=이헌구 fighter@dema.mil.kr 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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