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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T (Landing Vehicle, Tracked)

 

  상륙작전은 해상으로부터 적지에 상륙하여 돌격하는 공격작전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상륙작전은 장차의 작전을 유리하게 전개시키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 또는 전진거점을 확보하기 위하거나, 적으로 하여금 특정지역의 사용을 거부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된다. 항공기에 의한 공중기동작전이 상륙작전의 일부로서 사전에 실시되는 경우와 상륙작전과 병행해서 실시되는 경우가 있다.  상륙작전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적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태를 위시하여 기상조건, 해안·항만·항구의 수로상태, 상륙 및 투하 지역의 조건, 적의 병력과 화력의 배치 등에 관한 광범위하고 정확한 정보의 획득이 필요하며, 공격부대에 있어서도 이용할 수 있는 각 군부대와 함정, 항공기, 화력을 포함한 계획수립·협조·연습 등 세밀하고 방대한 준비가 요구된다. 따라서 상륙작전은 자연히 그 규모가 커지며, 전쟁귀결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작전초기에 적의 해안에 교두보를 확보해야하는 상륙작전은 지상, 해상,공중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초수평적, 입체적 상륙작전으로 발전하였고 이러한 상륙작전의 개념을 근간에서부터 완전히 뒤바꾼 혁신적인 무기체계중 하나가 바로 태평양전쟁을 통해 등장하기 시작한 LVT이다.

 

LVT가 개발되기 전의 상륙작전에는 주로 LCVT가 사용되었는데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마친 뒤 아이젠하워는 “히긴스의 상륙주정(舟艇·LCVP : Landing Craft, Personnel)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상륙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체 전략도 달랐을 것이다.”라며 LCVP를 극찬했다. 길이 11m, 폭 3.3m의 덮개 없는 상자 모양을 한 LCVP는 앤드류 히긴스가 1926년 강 하류나 얕은 해변에서 사용하도록 제작한 유레카(Eureka 아래사진참조)라는 보트로부터 비롯됐다.

 

유레카(EUREKA)

상륙주정 (LCVP)

LCVP는 상륙작전에서 병력과 장비들을 해안으로 수송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나 미 해병대가 이보다 더 주목한 것은 도널드 로블링(Donaldo Roebling)이 개발한 악어(alligator, 이하 악어)라는 수륙양용 트랙터(amphibian tractor, amtracs)였다. 실제 이 수륙양용 트랙터는 LVT(Landing Vehicle, Tracked)를 거쳐 현재 상륙돌격장갑차(Assult Amphibious Vehicle)로 발전했지만 LCVP와 같은 형태의 상륙주정은 이제 상륙작전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될것이다. 한국해군이 보유한 LCVP도 2010년에 모두 퇴역할 예정이다. 영국에서 개발되어 호버크라프트라 불리워졌던 강습주정(공기부양정)인 LCAC같은 장비들이 그역활을 충분히 대신하고도 남을 것이다.

 

1936년 플로리다에서 개발딩시 시험중인 Roebling's Alligator

LVT와 AAV의 원조로 인정받는 로블링의 악어는 1928년 플로리다 지방에서 잦은 태풍으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 이들을 구하기 위해 육상과 해상, 그리고 늪지대를 두루 주행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로블링은 최초 악어를 1935년에 선보였으나 큰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37년 라이프(Life)지에 소개되면서부터이다. LCVP가 병력이나 장비를 해안까지 수송하는 데는 상당히 유용할 수 있지만 파도와 해안의 조건에 따라 취약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상륙돌격을 위한 새로운 장비에 골몰하던 미해병대는 이에 관심을가지고 1940년 더 적극적으로 악어의 획득을 요구했다.

1941년 7월 플로리다州 레이크랜드에서 제작완료된 LVT 1호

미해군에 인도되어 시험운행중인 LVT1 Alligator

  

플로리다州 레이크랜드에서 카퍼레이드중인 LVT 1호와 과다카날상륙작전을 위해 대기중인 LVT1

1941년 악어는 군의 요구사항을 더 갖춘 뒤 미 해군에 의해 ‘궤도형 상륙차량’, 즉 LVT1(LVT Model 1)이라는 이름으로 취역했다. 해병대에서는 수륙양용 트랙터로 불렸다. 18~20명의 병력을 태우고 해상에서 시속 14km, 육상에서 시속 24km로 주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태평양전쟁 최초의 상륙작전인 과달카날 상륙작전(1942)에 처음 출전했다.

LVT1은 최초 병력수송 및 공격용이 아닌 함정에서 해안까지 보급품을 수송하는 용도로 쓰였으나 효용성을 크게 인정받았고 성능 개량에 들어가 육상 시속 40km 성능에 M3경전차의 37mm포로 무장한 LVT1A1, 현수장치와 엔진을 보강한 최초의 병력수송용 LVT2, 육군용 LVT2A를 잇달아 내놓았다.

하지만 이때 제작된 LVT1과 LVT2는 탑승한 병력들이 곧바로 하차하여 돌격할 수 있는 문 같은 램프가 없어 무장한 병력들은 뛰어내려야 했고 상륙후의 육상돌격작전을 위해 속도도 더 빨라야 했다. 이에 따라 1943년에 등장한 LVT3는 육상속도를 시속 30km로 향상시키고 램프도 달아 신속한 이탈이 가능하게 되었다.특히 1949년에 개량된 LVT3C는 C(Covered)가 의미하듯, 파도와 적의 수류탄 등으로부터 상륙군을 보호하기 위해 상부에 접철식 방호문을 설치한 점이 특징으로 지상 보병 전투지원차량으로도 유용성이 높았다.

 

상륙돌격장갑차 LVT의 발전과정

 

LCVP                                               LCM

  태평양전쟁 당시 수많은 섬과 산호초로 이루어진 남태평양의 독특한 전장 환경은 기존의 기동상륙정(LCM)과 차량·병력 상륙정(LCVP)의 운용을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일본 모두 동일한 문제에 직면했지만 미 해군은 1940년 군사용 목적으로 채택한 로블링 앨리게이터를 작전 환경에 적합하도록 개조하여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

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미 해병대가 사용한 상륙장갑차들은 무한궤도를 물갈퀴처럼 사용해 산호초·암초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복잡한 해안선도 거침없이 돌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 선박들 뿐만 아니라 상륙주정조차 기동에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도 상륙장갑차만큼은 신속·정확하게 병력을 해안에 상륙시킬 수 있었다. 태평양전쟁의 주도권이 점차 미국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던 1943년 11월 미 해병대는 타라와 섬 상륙작전에 상륙장갑차를 투입기로 전격 결정한다.

 

LVT1은 최종적으로 육지에서 약 20km/h 속력과 해상에서 10km/h의 속력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생산되던 시기는 1941년으로 1,226대가 생산되었다.

타라와에서 작전중인 LVT1

이를 위해 현대 상륙장갑차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LVT1 75대와 보다 개량된 LVT2 50대가 작전에 동원됐고 상륙작전 당일 상륙장갑차는 공격 선봉으로 일본군 방어선을 향해 돌격했다. 하지만 사령부의 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작전에 투입된 상륙장갑차의 실전 결과는 초라했다. 일본군의 해안 방어선을 돌파하고 상륙작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작전에 투입된 125대 중 무려 90대나 격파됐기 때문이었다.사실 초기의 상륙장갑차들은 부력과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볍고 얇은 금속판을 사용함으로써 기관총탄조차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방어력이 부족했다.

타라와 베치오섬에서 얻은 교훈

1943년이 저물무렵, 미군은 중부태평양을 장악하여 일본 본토를 향한 진격의 발판으로 삼기위해 중부태평양의 크고 작은 섬들 공략하기로 하는데 타라와환초도 그 주요 표적중 하나였다. 화산 위에 산호가 겹으로 쌓여 이루어진 환초(環礁)로서 외해와 연결이 가능한 몇 개의 좁은 초호(礁湖)를 가지고 있으며, 산호는 비행장 건설에 이상적인 재료였으나 주요 환초들은 일본군의 수중에 있었으며 강력히 요새화되어있었다.

니미츠 제독 휘하 3개 기동부대의 미군 지휘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섬들을 점령할 수 있으리라 낙관하고 있었는데, 타라와로부터 약160km떨어진 매킨환초를 공격했던 북방기동부대 소속 미 육군 제27사단은 요새에 틀어박힌 일본군에의해 엄청나게 지독한 고전을 겪게된다.

타라와 환초 40여개의 섬 중에서 길이 3km로 가장 큰 베티오섬이 미제2해병사단의 최우선 공략표적이었다. 과달카날 작전 경험이있는 미제2해병사단 작전장교 데이비드 M 쇼프대령은 사단장 줄리안 C 스미드 소장에게 섬을 둘러싼 날카로운 산호초를 밟고 진격하기위해서는 선체가 약한 LCVP보다 LVT를 더 많이 사용해야한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해군은 수심이 적당한 것으로 판단하여 해병대의 주장을 무시하고 히긴즈 보트로 불리우는 상륙주정 LCVP를 다량 투입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하지만 해병대는 아무리 홀수선이 낮은 LCVP라 할지라도 수심에 관한 정확한 해도 및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자칫 산호초에 좌초될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단장 스미드 소장은 제5상륙군 지휘관 홀랜드 M 스미드 소장에게 작전계획서 오퍼레이션 갈바닉을 제출하면서

상황을 가볍게 여기는 해군에대한 비판과 아울러 많은 수의 LVT보급이 필요하다고 보고하였다. 불같은 성격으로 하울린 매드라는 별명을가진 홀랜드 스미드 소장은 리치몬드 캘리 터너제독에게 LVT지원을 요구하였다. 캘리 제독도 여느 해군 지휘관들과 마찬가지로 타라와 환초의 수심에대해 낙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미드의 의견에 반대했다.
그러나 스미드 소장은 LCVP의 취약점을 열거하고는 LVT 없이는 타라와 환초 상륙작전은 성공하지 못한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 당시 각 군의 전술은 판이하게 달라 희생을 무릅쓴 공격을 최우선하는 해병대는 신중 또는 소극적인 타군과 마찰을 빚기도하였다.터너제독 또한 스미드 소장못지 않게 완고한 성격이어서 논쟁은 거듭되었다. 결국 스미드소장은 터너제독을 설득하는데 겨우 성공, 그나마 50대의 신형 LVT-2 지원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50대가 추가될지라도 충분한 전력을 확보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왜냐하면 제2수륙양용트랙터대대가 보유한 100대의 LVT들은 과달카날에서 사용되는 등 1943년 가을까지 평균 수명인 200시간을 이미 초과하여 400시간 이상의 가동을 기록하고 있었고 그 중에서 75대만이 수리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수리를 하였지만 LVT들의 부식 상태는 심각했고 추진력도 매우 떨어져있었다.  

신형 LVT-2 워터 버팔로 수륙 양용 차량 50대가 작전 개시 직전에 본국으로부터 전달되었다. 50대가 추가되었지만 기존의 75대와 합쳐봤자 겨우 125대밖에 되지 않아 LVT의 뒤를 따라 전개될 LCVP가  작전의  중요한 역할을 맡게될 운명이었다.철저히 요새화되고 정예 일본 해군육전대를 거느린 타라와 환초 수비대 사령관 시바자키 게이지 제독은 "미군 백만명이 백년을 공격해도 타라와를 점령할 수 없다"고 큰소리쳤다.

 

해군의 함포 및 항공지원에도 불구하고 대량 피해를 우려하고 있었던 해병제2수륙양용트랙터 대대 지휘관 핸리 드류 소령은  스미드 사단장에게 LVT에 장갑 설치를 건의하였다.결과적으로 드류 소령은 9mm장갑판을 어렵사리 구해 LVT에 부착하게되고, 작전 종료때까지 살아남은 소수의 해병장교들은 장갑이 많은 목숨을 구했다고 인정하게된다. 아무튼 지금 우리가 수륙 양용 장갑차로 부르고 있는 초기의 LVT는 장갑차량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1943년 11월 20일, 해군의 함포와 항공기들이  베티오를 사전 강타하였다. 대다수의 미군들은 이처럼 무시무시한 타격에 과연 얼마만큼의 일본군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의심하였지만 일본군의 피해는 경미했다. 해병대는 3개의 파로 나뉘어 베티오를 향해 진격했고 상륙 돌격 제1파는 125대의 LVT중 42대로 구성되었다. 함포와 공중폭격을 견뎌낸 벙커와 토치카에서 각종 해안포와 중기관총이 미군을 겨누고 있었다. 미군의 3개 공격 부대가 산호초를 넘어 접근하자 일본군은 가용한 모든 화기를 총동원하여 맹공격했고 연료탱크를 직격당한 LVT들이 강한 불길에 휩싸였다.
일본군의 집중  포화를 모면한 4대의  LVT가 가까스로 상륙 거점에 도달하여 소수의 해병대원들을 상륙시킬 수 있었으나 적어도 8대의 LVT가 순식간에 격파되었다. 적어도 15대는 포탄 구멍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으며 2대는 일본군이 설치한 지뢰에 접촉되어 파괴되었다. 암트랙에 설치된 장갑은 소구경탄에는 견딜 수 있었으나 대구경탄의 집중사격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뒤 이어 진격하던 제4,5, 6파의 LCVP들은 산호초에 좌초되어 꼼짝없이 일본군의 타겟이되었다. 암초를 극복할 충분한 수심이 없어 데이비드 M 쇼프 해병대령이 우려했던 비극이 실제로 연출되고 있었다. 베티오는 곧장 지옥으로 변하고말았다. 공격 제1파 총500명의 병력 중 제1수륙양용트랙터 대대장 드류 소령을 비롯한 323명이 죽거나 부상당했다.
상륙 거점에 도달한 해병이나 격파된 LVT에서 탈출한 해병대원 모두 일본군의 집중포화에 얻어맞아 꼼짝도할 수 없었고

지휘자가 전사하거나, 또는 살아있다해도 대부분의 통신망이 두절되어 병력을 집결시킬 수 가 없어 지휘 체계가 무너져 버렸다. 해병대 작전계획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타라와 레드비치에서 파괴된 LVT1과 희생된 병력들

LCVP는 상륙거점으로부터 300, 멀게는 800m 떨어진 지점에 병력을 내려놓아야했고, 병사들은 쏟아지는 포화를 무릅쓴 채  걸어서 초호를 넘어야만했다. 이 때문에 베티오섬 주변은 지옥으로변했다. 일본군의 정조준 사격으로 베티오의 초호는 파괴된 상륙주정 잔해와 시체와 피로 뒤덮였다.

상륙부대를 지원하기위해 해병제1전차대대 소속 10여대의 M4A2 셔먼 전차가 LCM 상륙주정에 의해 투입되었다. LCM은 초호 주변에 멈춰 전차와 병사들을 내려놓았다. M4A2 셔먼 전차는 함포 사격으로 만들어진 포탄 구멍에빠져 진퇴불능이 되거나 엔진이 침수되어 고장을 일으켜 오직 3대만이 상륙거점에 도달할 수 있었으나 상륙 교두보 확보는 요원했다.
LCVP로부터 병력을 인수받아 포화가 쏟아지는 해안을향해 돌진했던 125대의 LVT 중 LVT-1 52대와 LVT-2 30대를 상실했다. 35대는 직격탄에 격파당했고 9대는 연료탱크가 피탄되어 화재로 소실되었다.

2대는 지뢰에 접촉하였고  8대는 기계적 결함, 26대는 초호를 돌파하던 중 피탄되어 쓸모가 없게되어 버렸다.

가까스로 상륙거점에 도달했던 암트랙들은 병력과 탄약을 가지러 다시 바다로 나가는 동안 유산탄에 상당한 피해를 당했다. 암트랙 전방과 좌우에 거치된 50구경과 30구경 기관총은 그나마 방어용으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76시간의 사투 끝에 베티오가 함락되었다.
해병대는 3,400명이상의 사상자, 행방불명자가 발생했고 일본군도 2,600명의 해군 육전대를 포함 4700명이상이 희생했다. 해병대의 사상자 비율은 65%에 달했다.

 

이 사실을 알게된 미국민은 충격으로 분노했으며 언론은 진상조사를 촉구하기도했다. 참혹한 학살의 악몽을 겪은 미군은 미래의 상륙작전은 암트랙이 주도해야한다는 해병대의 주장을 인정해야했다. 뭍으로 인양된 LCVP와 LCM의 잔해는 참혹했다. 해병대는 LVT가 타라와에서의 승리와 패배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남서태평양 육해공 합동작전의 책임당사자인 육군은 타라와의 교훈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암트랙전력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해군 또한 다시는 암트랙의 신뢰성을 의심하지 않게되었다.

타라와의 충격은 미군의 상륙 전술에도 큰 영향을 끼쳐 해군 함포와 공중 폭격 전술이 큰 변화를 맞게되었고 중요한 상륙 무기가된 LVT의 생산량이 증가하고 이에 따른 신전술 개발과 함께 장갑과 무장이 강화된다.

 

LVT(Mark II)

LVT-2 Water Buffalo(물소,1942)는 LVT-1의 개량형으로 속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고(물에서 12km/h, 땅에서 32km/h) 기타 내구성 부분에서도 LVT-1을 훨씬 앞지른다. 약 2,962대 가량 생산되었고 해병대는 1,355대를 획득 운용하였다. LVT-2는 LVT-1과 구조 및 외관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차체 높이는 거의 비슷하나 전장과 폭이 증가하고 조종석 캡 높이가 낮아져 날씬한 형체로 바뀌었다. 조종석은 가시도 증진을위해 2개의 큰 창으로 변경되고 좌우 측면에 각각 1개씩 설치되었다.동력은 공랭식 7기통 250마력 컨티넨탈 레이디얼 엔진으로부터 공급되었다.LVT-1보다 약1톤 가량의 적재 능력이 증가, 무장 병력 24명 또는 6,500파운드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게되었다.그리고 수상 항속 거리는 50% 증가하였으나 육상 항속거리는 배로 증가하였다.화물실 전방과 측면에 설치된 레일식 거치대에 50구경, 30구경 기관총을 장착하여 사용한다.수명 연장을위한 FMC의 노력으로 LVT-2는 평균 수명이 600시간으로 LVT-1에비해 3배나 증가되었으나 궤도는 거친 환경에서는 150시간 마다 교체해주어야한다. LVT-2가 양산중이던 1944년 3월부터 승무원 보호용 장갑 개발이 시작되었고, 추가로 특정 부위 방어용 장갑 킷트가 제작되었다.

미해병대는 타라와 전투 결과를 교훈삼아 기존 상륙장갑차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장갑과 무장 등 성능을 더욱 강화한 LVT3와 LVT4를 실전 배치했다. 이신형 상륙장갑차들은 기존 LVT2에 비해 적재량과 병력 수송 능력·방어력 등에서 더 우수한 성능을 갖추고 있었으며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엔진을 전방으로 이동하고 후방램프를 추가해 효율을 높였다.

 

LVT-4                                              LVT-4 Water Buffalow(1943)

 

특이하게 LVT-3를 건너띄고 LVT-4가 먼저 나왔다. LVT-4의 특이한 점은 엔진을 전방에 설치하고 후면으로 문을 달아 놓아서 병력이 타고 내리는 것이 뒷쪽에서 이루어지게 하여 방어 측면에서는 훨씬 수월하게 되었다. 일반 상륙정의 경우 해변에 병력을 내리면 그것을 끝이지만 LVT의 경우는 계속 전진을 하며 해병의 공격 및 방어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2차 대전 가운데 가장 많이 생산되어 가장 많이 사용된 차량으로 8,351대가 만들어졌다.

 

LVT-3

LVTA-3 Bushmaster(1944)

LVT-3는 꽤 늦게 완성된 것으로 기본적으로 LVT-4와 비슷하다. 엔진 역시 앞에 달려있으며 후방으로 타고 내리는 것이 가능하다. 오키나와 상륙 때 처음으로 쓰였으며 총 2,964대가 생산되었다. 그 밖에 LVT 시리즈에 무기를 장착한 LVT(A)와 같은 변형 모델도 있다.(아래 LVTA 참조)

상륙장갑차가 등장하면서 상륙작전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과거에 비해 보다 안전하고 신속하게 병력을 상륙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미국은 LVT1부터 LVT4까지 1만5천여대의 상륙장갑차를 양산, 주요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고 상륙작전 양상마저도 완전히 변모시켰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상륙장갑차는 현재 강력한 자체 화력과 수륙양용 성능을 바탕으로 상륙작전을 전담하는 해병대의 주력 장비로 사용되고 있다. 만약 태평양전쟁을 통해 상륙장갑차가 실전 배치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상륙작전의 개념은 크게 변모했을 것이며 국가 전략 기동군으로서의 해병대역할과 중요성도 크게 위축됐을 것이다.

 

 

LVTP5                                              LVTP5A1

LVT5는 1956년에 개발되어 1957년까지 1,124대가 생산되었고 1960년에 LVTP5A1으로 개량되었다.LVTP5A1은 길이 9.00m, 폭 3.57m, 높이 2.57m, 전투중량 지상 30톤/해상 37.4톤이고 승무원 3명, 병력 수용인원 34명(최대 45명)이며, 엔진은 콘티넨탈 12기통(수냉식)으로 2800 rpm에서 810마력, 속도는 지상 42.28km/h 해상 10.94km/h, 연료탱크용량 1,720리터, 순항거리 306km, 해상수송물량 5.4톤, 지상수송물량 8.16톤, 무장은 7.62mm 기관총 1정이 장착되었다. 또한 장비의 특징은 램프가 정면에 있고, 유압으로 작동되며 선체가 바지(barge) 형태로 효과적인 해상 운행을 위해 전면부가 역 "V"형이며 엔진은 후미에 설치되어 있고 조종수 포탑(큐폴라) 주위에 잠망경이 있다. 그러나 상륙 후 전면의 램프가 서서히 열릴 때 상륙군들은 전방에서 방어하는 적의 직사화기에 노출되어 생존성이 결여되었으며, 전투중량이 40톤이나 되어 기동성 및 정비유지에 문제점이 있어 알루미늄 구조물로 제작된 LVT7이 개발됨으로써 도태되었다

이처럼 개발된 후 상륙작전에서 그 효율성을 크게 인정받은 LVT는 이후 성능개발에 들어가 육상에서 시속40km 성능에 M3경전차의 37mm포로 무장한 LVT1A1를 시작으로 더욱 성능이 우수해진 다양한 형태의 LVT를 잇달아 개발, 제작하여 전투에 활용하게 된다.

 

LVTA(Mark I)

LVTA(Mark II)

 

LVTA(Mark IV)

LVTA's heading for Okinawa

LVTA4 1945년 Iwo Jima 해변




 

LVT: Landing Vehicle, Tracked (Armored)

 

LVT(1)

LVT(2)

LVT(3)

LVT(4)

LVT(A)1

LVT(A)2

LVT(A)4

Displacement

16,900 lbs

25,200 lbs

28,000 lbs

23,350 lbs

25,200 lbs

27,600 lbs

38,000 lbs

Length

21'6"

26'1"

24'1"

26'1"

26'1"

261"

26'1"

Beam

9'10"

10'8"

10'10"

10'8"

10'8"

10'8"

10'8"

Speed

4 knots (water)
15 mph (land)

5.4 knots (water)
25 mph (land)

5.2 knots (water>
25 mph (land)

5.4 knots (water)
25 mph (land)

5.4 knots (water
25 mph (land)

5.4 knots (water)
25 mph (land)

5.2 knots (water)
25 mph (land)

Armament

1 .50-cal mg, 1 .30-cal. mg.

1 .50-cal mg, 1 .30-cal. mg.

1 .50-cal mg, 1 .30-cal. mg.

1 .50-cal mg, 1 .30-cal. mg.

1 37mm., 3 .30-cal. mg.

1 .50-cal mg, 1 .30-cal. mg.

1 75mm. howitzer, 1 .50-cal. mg.

Complement

3

3

3

3

6

6

5

Capacity

4,500 lbs cargo or
20 equipped troops

6,500 lbs cargo or
24 equipped troops

8,000 lbs cargo or
24 equipped troops

6,500 lbs cargo max.

1,000 lbs cargo

6,500 lbs cargo

2,000 lbs ammunition and gear

Propulsion

Hercules WXLC 3 6-cylinder, 146 hp. @ 2,40 rpm gasoline engine

Continental radial air-cooled 7-cylinder 200 hp. @ 1,800 rpm gasoline engine

2 Cadillac V-8 water-cooled 220 hp @ 3,400 rpm gasoline engines

Continental radial air-cooled 7-cylinder 200 hp. @ 1,800 rpm gasoline engine

Continental radial air-cooled 7-cylinder 200 hp. @ 1,800 rpm gasoline engine

Continental radial air-cooled 7-cylinder 200 hp. @ 1,800 rpm gasoline engine

Continental radial air-cooled 7-cylinder 200 hp. @ 1,800 rpm gasoline engine

Built

1,225

2,963

2,962

8,348

509

450

1,890

Manufacturer

Food Machinery Corp.

Food Machinery Corp.

Borg-Warner

Food Machinery Corp.

Food Machinery Corp.

New Britain

Food Machinery Corp.

1st Combat

Guadalcanal

Tarawa

Okinawa

Saipan

Kwajalein

New Britain

Saipan

 LVT 제원표

그러나 1960년대 미 해병대의 주력LVT인 LVT5는 저속의 해상운행속도, 정비유지의 어려움등으로 1963년 3월 새로운 LVTP 소요를 요구하고 1967년 최초 15대가 시제품으로 제작된 후 미 해병대에 인계되어( LVTPX-12로 명명) 1969년 시제품에 대한 시험을 완료하였다. 그후 1971년에 생산된 장비가 LVTP-7으로 명명되어 1972년에는 최초로 LVT-7으로 편성된 부대가 탄생하였다. LVT7은 승무원 3명, 병력 수송인원 25명, 길이 7.94m, 폭 3.27m, 높이 3.26m, 전투중량 22,838kg, 비전투중량 17,441kg, 연료탱크용량 681gal, 순항거리 482km(40km/h 운행시)/해상 7시간(2,600 rpm에서), 포탑무장 CAL50 M85 HMG 1정, 엔진은 디트로이트 디젤 2행정 8V53T 8기통 수냉식이며, 2,800RPM에서 400마력의 힘을 낼 수 있다. 이 장비의 특징은 후방램프, 전방엔진 구조로 해상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전면(선수)을 수정했으며, 해상 운행시 최초로 궤도가 아닌 별도의 해수추진장치에 의해 추진되고 육상 운행시에는 궤도에 의해 기동되며, 육/해상에서 제자리 360도 회전(PIVOT)이 가능하고 차체는 알루미늄 구조물로 제작되었다. LVTP7은1974년 9월까지 생산된 LVTP7은 1985년까지 998대가 LVTP7A1으로 개조되었고 329대가 추가 생산되었다.

 

LVTP7

AAV7A1

1977년 미국 FMC사는 LVT7 14대를 새로운 시제품(지금의 LVT7A1,Sea Dragon)으로 개조하는 계약을 미 헤병대와 체결하여 1982~1986년에 LVT 수명연장계획(SLEP)에 따라 미 해병대 전 LVT7을 LVT7A1으로 개조하였는데, 개조중점은 신뢰성, 가용성, 정비성, 내구력 증가와 수명 유지비용 감소 등에 두었다. 주요 개조작업은 디트로이트 8V 53T(2행정 8기통)엔진을 커민스 VT-400(4행정 8기통)엔진으로 교체, 유압식 포탑을 전기구동식(EDWS:Electric Drive Weapon Station) 포탑으로 교체, 포탑에 연막탄 발사기 부착, 엔진에 연막발생장치 설치, M24 적외선 야간 운행장치를 수동형 AN/ VVS-2(A) 빛증폭식 야간 운행장치로 교체, M27잠망경(주간용)을 M36E2(주/야간용)잠망경으로 교체, 위치식별장치(PLRS:Position Location Reporting System) 등을 설치하는 작업이었다. LVT7에 비해 LVT7A1의 외관상 특징은 포탑에 2개의 연막탄 발사기가 부착되어 있고 전면의 전조등(헤드 라이트) 모양이 "□" 형으로 해상 운행시 탈거 가능하며, 안테나가 후방에 설치되어 있다. 걸프전에서는 AAV와 함께 작전에 참가하였으며 1985년 LVTP7A1을 개량하여 AAV7A1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이제 상륙돌격장갑차는 AAV가 주력이 되었고 차세대 상륙돌격장갑차로 개발된 EFV도 2015년 실전배치를 준비중에 있다.

 

AAV7A1

 

대한민국해병대의 LVT

6·25전쟁 중 1951년 10월 15일 미 군원으로 받은 이 LVT3C를 운용하기 시작하며 최초로 LVT 소대로 창설하여 운영했던 한국 해병대는 휴전후 해병대 규모가 연대급에서 여단을 거쳐 사단급으로 증편되면서 1955년 1월15일 LVT 운용부대도 대대급으로 확대됐다. 이에 따라 58년 LVT3C(상기사진)를 미 군원으로 ○○대를 인수하여 주력으로 운용했다. 625전쟁 중 인천상륙작전과 한강 도하작전에서 크게 활약한 것이 바로 이 LVT3C형이다. 이에 앞서 귀신잡는 해병의 명예로운 칭호를 얻은 한국군 최초 단독 상륙작전인 1950년 8월의 통영상륙작전에서는 민간선박을 이용하여 해병대원들을 상륙시켰다.

 

LVT3C

LVT-3C는 파도와 적의 수류탄으로 부터 상륙군을 보호하기 위해 화물격실 상부에 카고해치(접철식 방호문)를 설치하였고 전면에 규폴라(소형 포탑)를 설치하여 CAL30 LMG 1정을 추가 무장시켰다. 주로 상륙작전 능력보다 지상 보병 전투지원차량으로 운용되었으며 우리해병대는 1958년부터 1986년까지 운용하였다

월남전에 참전중인 청룡부대원들과 LVTP5A1

이 즈음 미 해병대는 승무원 3명에 병력을 34명 수용하고 지상에서 시속 42.28km, 해상에서 시속 10.94km로 달릴 수 있는 LVT5와 LVTP5A1을 전력화해 운용했다. 그러나 역시 상륙 후 LVT 전면의 램프가 서서히 열릴 때 상륙군들이 전방의 적 직사화기에 노출돼 생존성이 결여되고 40톤에 달하는 전투중량으로 기동성과 정비 유지에 문제점이 있어 63년 3월 새로운 LVTP 소요를 요구했다.

LVTP7

LVT7R

f09f9ac7edf8718050e68d2711760786.jpg

구난용 상륙돌격장갑차(KAAVR7A1)

이에 따라 71년 LVTP7이 개발돼 72년에 최초로 LVT7로 편성된 부대가 출범했다. LVT 뒤에 붙는 약호 P는 병력용을, C가 붙으면 지휘용(단 LVT3C는 Cover), R은 구난용을 뜻한다. LVT7은 승무원 3명, 병력 수송인원 25명, 길이 7.94m, 폭 3.27m, 높이 3.26m, 전투중량 22톤, 해상 7시간 운항, 포탑무장 CAL50 M85 중기관총 1정 등의 제원을 가졌다. 해상 운행 시 궤도가 아닌 별도의 해수 추진 장치에 의해 추진되는 최초의 LVT로서 육상에서는 궤도에 의해 기동된다. 또 육·해상에서 제자리 360도 회전이 가능하고 차체는 알루미늄 구조물로 제작된 점 등이 주요 특징이다. 우리 해병대는 이 장비를 74년에 61대를 군원으로 인수해 운용했다.

LVTPA1 - LVTP7과 LVTA1은 외형적으로는 거의 비슷하다. 전면에서 볼 때 전조등이 원형인 것이 LVTP1이고 네모형으로 보이는 것이 LVTPA1이며 안테나가 후방에 설치되어 있으며 포탑에 연막탄 발사기가 설치되어 있다.

이후 80년대 초 미군은 LVT7의 개량에 들어가 위치식별장치 탑재와 함께 포탑을 유압식에서 전기구동식으로 바꾸면서 2개의 연막탄 발사기를 부착하고, 잠망경도 주야간 겸용으로 교체한 LVT7A1(Sea Dragon)을 갖추게 됐다. 정비성과 내구력도 향상된 LVT7A1은 85~86년 우리 해병대에 도입됐다. 1985년 미해병대가 LVT7A1을 개량하여 명칭을 AAVP7A1으로 변경하였고 한국해병대도 LVT7A1을 KAAV7A1으로 개량하여 운영하게된다.

 

 

 

이후 대한민국해병대는 상륙작전 전력증강의 일원으로 삼성테크원에서 KAAV7A1을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면허생산하게 되었고 이 KAAVPA1을 주력으로 상륙돌격장갑차를 운영하고 있다. LVTP7A1은 60대, KAAV7A1은 73대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해병대는 2009년 11월 구형 LVTP7A1 10대를 인도네시아 해병대에 무상으로인도하기도 했다.<해병닷컴 임영식>

 

해병대상륙돌격장갑차.jpg

 

DSC_5402.JPG

2011년 5월19일 RLT 상륙훈련중 독석리에서 촬영

 

<참고자료>

Ships of the U.S. Navy

AMTRAC.ORG

WAR FILE http://blog.naver.com/rectek2/10023116349

국방홍보원

국방일보 2009년 4월 20일 신인호

국방일보 2006년 9월 04일 계동혁

국방기술품질원 국방품질지 신재호 "해병대의 발 LVT"

  • 이남철 2010.04.24 00:51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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