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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수 절정기때 해병대 입대  
   
ㆍ 1947년 서울 출생
ㆍ 배문고 졸업
ㆍ 한일은행 투수, 배문고 ·상문고 · 동국대 감독, 쌍방울 레이더스 · OB 베어스 감독 역임
ㆍ 2001년 골드 스포츠 프로야구 대상 프로감독상 수상
 

 

1967년 해병대에 입대할 당시 나는 그해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는 등 투수로서의 기량이 절정에 올라 있었다. 대회 참가 이후 나를 눈여겨 본 해병대·육군 야구팀 관계자들이 집중적으로 영입(입대) 제의를 해왔다.

내가 소속돼 있던 한일은행 강대중 감독은 좀더 선수생활을 한 후 입대하라며 나를 잡았지만 만류를 뿌리치고 해병대에 입대했다. 당시 해병대팀은 투수력만 보강하면 실업리그 우승도 할 수 있는 강팀이어서 내가 가면 뭔가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복무기간이 26개월로 짧다는 것도 구미를 자극했다. 해병대가 멋있어 보였다는 것도 입대하게 된 동기 중 하나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훈련소에 입소한 후 힘들기로 소문난 해병대 훈련을 받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해와서인지 견딜 만했다. 그나마 훈련소에서는 열흘 정도밖에 훈련을 받지 못했다. 원래 4주 훈련이었지만 입소하자마자 실업야구대회가 잇따라 두 개나 열리는 바람에 거기에 참가하고 돌아와 보니 동기생들의 훈련이 이미 끝나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사격도 사격술 예비훈련만 받았지 총 한 번 제대로 쏴보지 못했으니 해병 치고는 상당히 허술한 해병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내게도 총을 잡아볼 기회가 생겼다. 그 계기는 다름 아닌 김신조 사건(1968년 1·21사태). 이 사건 이후 전군에 비상이 걸렸고 운동선수들도 태릉에서 사격훈련을 받게 됐다.
해병대 야구팀은 해군 헌병감실 소속이어서 서울 회현동 헌병감실 내무실에서 생활했다.

해병대 야구단을 최고의 팀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안고 입대했건만 사실 나는 당초 목표만큼 활약을 펼치진 못했다. 입대 전 어깨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은 알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군에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평소 공 100여 개는 던져야 피로가 오던 어깨가 60~70개만 던져도 아플 정도였으니. 그나마 내가 군생활을 하던 시기에 해병대 야구단이 1969년 실업리그 우승을 비롯해 전국체전·백호기 야구대회 등에서 우승해 체면 유지를 할 수 있었다.

해병대 야구단인 만큼 경기에도 `해병대 정신'으로 임하곤 했다. 당시 감독은 삼미·롯데에서 감독을 지낸 김진영씨였는데 선수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야구를 했다. 비록 우승해도 포상휴가는 못 갔지만.
그 중에서 우리 팀원들이 가장 눈에 불을 켜고 야구를 했던 경기는 실업리그도 아니었고 전국체전도 아니었다. 당시 군에는 해병대·육군에 야구팀이 있었는데 두 팀의 경기만큼은 해병대와 육군 모두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였다. 때문에 피와 땀을 상징하는 빨간색과 노란색이 조합된 유니폼을 입고 육군과 경기를 할 때의 그 치열함이란. 육군에는 질 수 없다는 자존심 문제도 있었고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을 당시 `지면 베트남에 보낸다'는 지휘관들의 협박성(?) 격려도 경기의 열기를 더하는 데 한몫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 신고를 하던 날 `뭔가를 해냈구나'하는 뿌듯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남자로 태어나 병역의 의무를 수행한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군에 다녀오면서 한마디로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정신력과 사고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요즘 프로야구 후배들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후배들을 보면 위계질서는 있지만 정신력이나 협동심 등이 이전에 군생활을 거친 선배들만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이기적인 면이 눈에 띌 때가 많다. 따라서 지금 군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장병들은 군문을 나설 무렵 강한 정신력과 협동심을 갖춘 인재가 돼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두산베어스 감독 김인식〉
 

내인생의 스승 `해병대'  

 

 
내 인생에서 해병대, 축구, 불교를 빼놓는다면 그야말로 빈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해병대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정도로 큰 의미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무명시절에도, 대한민국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가수가 된 후에도 아무런 직함이나 보수 없이 해병대 홍보활동에 앞장서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자랑스러운 해병인임을 자부하며 살고 있지만 입대 당시만 해도 사실 나는 해병대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입대 전인 1980년 무렵, 나는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는 무명 가수였다. 나이가 찼으니 군대를 가야 할텐데 어떻게 하나 고민하던 중 해병대 얘기를 듣게 됐다. 그 무렵 육군의 복무기간은 36개월이었는데 해병대는 30개월 정도만 복무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저 복무기간이 짧다는 이유만으로 `겁도 없이'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하지만 해병대의 뜨거운 맛은 입영열차 안에서부터 맛볼 수 있었다. 눈을 깜빡이지도, 눈알을 굴리지도, 숨을 쉬지도 못하게 만드는 통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해병대원으로서 `악'을 키우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었다.

해병 401기로 입대해 `해병중의 해병'임을 자부하는 포항 1사단 72대대 7중대 3소대원으로서 겪었던 고된 훈련과정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 해병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이니까. 하지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나는 군 복무중 팀 스피리트 훈련에 세번 참가했다. 그 당시 우리 해병대가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본 미군 관계자가 “한국 해병이 적이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 최강의 해병으로 거듭나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이겨내야 했다. 나와 우리 전우들은.

훈련도 중요하지만 전투력 제고를 위해 효율적인 휴식 또한 반드시 필요한 것. 나는 군에서도 끼를 주체하지 못해 입대전 음악활동을 했던 전우들을 모아 연예대를 만들었다. 빠듯한 훈련일정 중에도 짬을 내 연습을 했고 여가시간마다 PX 한쪽 구석에 자리를 마련해 음악을 연주하곤 했다. 음악활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선배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많은 전우들이 호응해 주었다. 이를 통해 해병의 사기를 높였다는 생각에 지금도 그때 내가 했던 일을 가슴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노래 못지 않게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있던 나는 응원단장으로도 맹활약했다. 부대별 체육대회 때면 늘 부대 대표로 나가 응원을 하곤 했는데, 그때의 모든 활동이 나중에 가수활동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음은 두말 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다.

하여튼 나는 30개월 남짓한 해병대 생활을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났다. 해병대에서 배운 것은 오직 `해병정신'뿐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고된 10년 이상의 무명가수 시절을 나는 해병정신으로 버텨냈고, 지금도 매니저 없이 가요계의 독립군 가수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해병대, 넓게는 군대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가장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해외 교포들이나 직장인, 학생들이 방학이나 휴가를 이용해서 해병대 훈련캠프를 찾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번칠이·번숙이(우리 아들 동현이와 딸 주현이의 애칭)를 해병대에 보내 해병인의 길을 걷게 할 생각이다.
후배들이여! 해병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군에서 인생의 밑거름이 될 해병정신을 배우라.
〈가수 김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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