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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2 18:54

천자봉과 해병대

조회 수 6669 댓글 0


||0||0진해만을 병풍처럼 둘러싼 장복산 줄기 동남쪽 끝에 천자봉이라는 봉우리가 있다.
천자봉은 높이가 500m 정도지만 그와 연해 있는 시루봉(웅산)은 693.8m나 된다.
밑에서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가파르고 돌과 바위가 많아 길이 매우 험한 산이다.
해군과 해병대 현역들, 그리고 수많은 예비역 해군·해병대 전우에게 이 산은 특별한 의미와 추억을 갖는다.
해병대 창설 당시 신현준 사령관이 시민들에게 해병대의 용맹성을 보여준다고 시작한 천자봉 행군이 그 시작이었다.

해군에서는 사관학교 생도들이 가입교하는 날 이 산에 오른다.
여자 생도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첫날부터 이를 악물고 오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해병대에게는 이 산은 눈물고개로 유명하다.
신병훈련 때에는 행군이 아니라 구보로 이 산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가다가 힘들면 쉬고, 목마르면 물마시고 하는 식의 등산이라면 무엇이 어렵겠는가.

◆ 용맹성 표출로 구보 등산

그러나 해병대 훈련은 그게 아니다. 처음부터 뛰어야 하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속도를 내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소대별·분대별로 경쟁이 붙으면 참기 어려운 고통이 된다. 빨리 뛰라는 조교들의 성화와 채근이 더해지면 어떤 상황이 될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해병대 출신들은 둘만 모여도 천자봉 구보 이야기로 옛날을 회상하게 된다.
근래에는 그 봉우리 옆에 있는 시루봉에 ‘해병혼’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진해를 찾는 해병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옛 감회를 불러 일으킨다.
이 글씨는 1964년 입대한 제158기 출신들이 고난을 이겨낸 영광을 기념하기 위해 돌을 주워 모아 모자이크 글자를 새긴 것이라고 한다.
천자봉은 이름 그대로 조선과 명나라 태조와 관련된 전설을 간직한 산이다. 그래서인지 진해와 마산 창원 시민들에게도 특별한 정서를 제공한다.
이 지방 전설에 따르면 옛날 천자봉 연못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지 못해 마을사람들을 못 살게 굴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이무기에게 용 대신 천자가 되라고 권해 연못 아래 백일마을 주씨 가문의 아기로 태어났다.
이 아기가 훗날 중국으로 건너가 명나라를 건국한 태조 주원장이라고 전한다.

◆ 시루봉엔 '해병혼' 글씨 감회

또 다른 전설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보태진 이야기다. 함경도 사람 이씨가 상을 당해 하인 주씨를 데리고 명당을 찾으려고 천자봉에 올랐다.
그런데 홀연히 바다에서 반인반어(半人半魚)의 괴물이 나타나 “바다속에 굴이 둘 있는데 그 가운데 오른쪽 굴이 천자가 태어날 명당이니라”하고 일러주었다.

이 말을 들은 하인이 자기 선친의 유골을 오른쪽에 묻고 주인 이씨 선친을 왼쪽에 묻었다.
그래서 주원장이 명나라 천자가 되고 이성계는 조선 천자가 됐다는 것이다.전설이란 허무맹랑한 것이다. 황당무계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전설을 거슬러 올라가면 비슷한 일이나 현상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렇게 되기를 염원하는 주민들의 기대와 바람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천자봉 전설은 허무맹랑하지만 그 봉우리 아래서 태어난 해군·해병대가 훗날 한국전쟁에서 기울어 가던 조국의 운명을 건졌다.

베트남전에서 국위를 떨친 일까지 떠올리면 그 전설이 허무맹랑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20세기 대한민국 해군· 해병대의 영광을 내다본 전설이라면 억지일까.
1949년 말 해병대사령부가 제주도로 옮겨가 천자봉과의 인연은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1년도 못 돼 해병대는 다시 그 봉우리 아래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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