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인지구 작전(1950.9.15~10.8)
▲ 인천 상륙작전
· 인천 상륙작전 계획 수립과정
- 맥아더 장군의 한강전선 시찰(1950. 6.29.)
“북한군의 남진을 낙동강을 연한 선에서 저지하는 동시에 절대 우위의 제공/제해권을 이용하여 북한 배후의 요충지인 인천 상륙을 통해 북한군을 협공할 것“을 구상
- Blue Heart 계획(1950. 7. 4. : 극동군사령부의 최초계획)
맥아더 장군은‘Blue Heart’계획을 수립하여 1950. 7.22일경 인천에 상륙할 예정이었으나, 지상군이 낙동강전선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효과적으로 저지하는데 실패함으로써‘Blue Heart’계획은 폐기되고, 상륙작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새로운 상륙계획인 ‘Chromite’계획을 수립
- Chromite 계획(1950. 7.23. : 라이트 장군이 작성한 개략계획)
9월 중에 미 해병 제1임시여단, 미 육군 제2보병사단으로 3개 지점 중에서 어느 한곳에 상륙
·100-B : 인천에 상륙 후 서울, 수원지역을 점령하고, 제8군은 반격으로 전환하여 북한군의 병참선 차단
·100-C : 군산에 상륙 후 대전방향 공격, 북괴군의 우측 배후 장악
·100-D : 주문진 상륙, 강릉 점령 후 원주로 공격, 북한군의 후방 차단
- 상륙군 부대 편성계획 변경(1950. 7.29.)
·북한군 제6사단 호남 축선 우회기동(마산-부산 축선 위협)
* 인천 상륙작전의 전제조건 : 부산 교두보 확보
* 최초 상륙작전 부대인 미 해병 임시 제1여단과 미 제2사단을 낙동강 방어선으로 전용하여 북괴군의 남진 저지 시도
·상륙군 부대 변경
* 미 제2사단→주일 미 제7사단
* 미 해병 임시 제1여단→미 해병 제1사단
* 동경회의(1959. 8.23.)
·인천상륙작전 반대 이유
* 부산으로부터 240km 이격된 지역에 유엔군 병력을 분할 운용 시 적에 의한 각개 격파당할 위험 예상
* 상륙군 편성을 위해 낙동강 방어선으로부터 해병여단을 전용 시 낙동강 방어선 확보 곤란 예상
* 상륙작전을 위한 선박의 부족으로 인해 제8군에 대한 보급용 선박을 상륙작전을 위해 전용이 불가피
* 미 제7사단을 상륙군으로의 전용에 따른 일본 방어의 공백 발생
* 인천의 지리적, 지형적 및 해양적 조건 부적합
※ 육·해군 참모총장은 인천 대신 군산 상륙을 권고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주장한 이유
* 병참선의 요충인 서울을 측방에서 기습공격
* 신장된 적의 병참선 차단 가능
* 서울 조기탈환으로 한 국민에게 정치적 ? 심리적 안정감 부여
- 미 10군단 창설(8.26.)
·미 상륙군 : 미 해병대 제1사단(스미스 소장), 미 육군 제7보병사단
·한 상륙군 : 해병대(3개 대대), 육군 제17연대
- 인천상륙작전 재검토 의사 타진 : 미 합참 2회(9. 5./9. 7.)
- 미 합참 최종 승인(9. 9.)
· 인천상륙작전 경과
- 상륙군 임무
·인천항만의 확보, 해안두보 점령
·가능한 신속히 진출, 김포 비행장 확보
·한강 도하, 수도 서울 탈환
·미 제8군과 연결 작전
- 한국 해병대 임무
최초 사단 예비가 되어 대기파로 적색해안에 상륙하여 미 제5해병연대와 협조, 인천 시가지 점령 작전 실시
- 준비 작전
·8월 초
* 순양함, 구축함, 항모 : 동해안에서 활동, 낙동강 방어선 항공/함포 지원
* 소함정 : 서해안에서 활동, 해안 봉쇄/보급 차단
·8.18. ~ 9.10 : 서해안 도서 상륙 덕적도, 영흥도, 연평도 등
* 8.18. 한국 해병대 덕적도 상륙
* 8.20. 한국 해병대 영흥도 상륙
* 9. 6. 한·미 해병대 최초 합류(형제 해병 인연)
* 9.11. 한·미 해병대 최초 회의
·9.12. : 서해안 폭격
·9.13. ~ 15. : 적 방어선, 교통시설 파괴(함재기 200대)
※ 인천 상륙작전 기만 활동
① 미 ? 영 소규모 특공대 군산 상륙(9.12.)
② 진남포, 삼척, 원산일대 동일 규모의 함포 사격(9.13.)
③ 군산을 모형으로 한 공개적 예행연습
④ 군산 해안의 주민 철수를 종용하는 전단 살포(9.14.)
⑤ 군산 주위 50km 지역 항공폭격(9.14.)
⑥ 동해안 장사동 일대 한국군 특공대 상륙(9.14.)
⑦ 미 매스컴 보도 : 10월 이후 반격/인천 상륙작전 실시
- 상륙작전
·9.12. : 261척의 대규모 수송선단, 인천으로 출발
·9.15. : 작전 개시
* 제1단계 작전 (월미도 탈환)
① 05:00 함재기 월미도 폭격 개시
② 05:30 순양함 포격 실시
③ 06:30 미 해병 제53대대 녹색해안 (월미도) 상륙
④ 07:59 제1목표 탈환 (월미도)
* 제2단계 작전 (인천 해두보 확보)
① 17:32 미 해병 제1연대 청색해안 상륙 개시
② 17:33 미 해병 제5연대(-) 적색해안 상륙 개시
③ 18:00 한 제1해병연대 적색해안(만석동) 상륙
·9.16. : 인천 시가지 소탕전
* 한국 해병대 인천 시가지 소탕작전 참가
* 01:30 미 해병 전방연대 인천 해안두보 완전 확보
※ 미 해병 제5연대 : 인천 시가지 소탕작전을 한국군 해병대에 인계 후 김포방향으로 진격
·9.17. : 한 ? 미 해병대 부평으로 진격
·9.18. : 미 해병 제5연대 김포 비행장 확보, 미 제7사단 제32연대 인천 상륙
·9.20. : 미 해병 제5연대와 한국 해병대 한강(행주) 도하
· 작전 결과
- 적의 주 병참선/퇴로 차단으로 전쟁의 주도권 UN군으로 급전
- 적 후방지역에 대한 상륙실시로 UN군의 인적, 물적, 시간적 손실 최소화 효과 달성
- 상륙전 측면에서의 의의
·상륙작전의 가치와 해군/해병대의 상륙작전 수행능력 과시
·해병대의 필요성 재인식
* 미 합참의장(브래들리) 9개월 전 불필요 주장
·상륙전 교리의 타당성 증명
- 인천상륙의 영향(각국)
·미국
* 전쟁목적 변경 : 전쟁 이전 회복→한반도 통일
* 상륙작전에 대한 중요성 인식
·북한
* 전투의지 마비(痲?), 작전 주도권 상실
* 자체 전쟁수행 불가 : 중공군 작전지원
* 상륙작전 저지 방법 강구 : 원산 상륙작전 시 방어
·중국
* 6·25전쟁 참전 결정
* 전쟁기간 중 상륙작전에 대비
· 교훈
- 상륙작전에 대비한 해군/해병대의 전문화 유지 필요성
- 새로운 상륙전 교리 및 기술/장비 개발의 필요성 대두
- 상륙작전 시 기습효과 달성의 중요성 입증
- 전술정보의 확보 필요성 대두
- 신형 상륙함정의 필요성 대두
▲ 서울 탈환작전
· 104고지 전투
- 작전기간 : 1950. 9.21. ~ 9.22.
- 작전지역 : 서울 수색
- 적군 : 미상, 아군 : 해병대 제1대대
- 상황
·9.15. 인천 상륙작전에 성공한 아군은 곧바로 인천을 장악한 후 경인가도를 따라 서울을 향한 진격을 시작하여 9.17. 부평, 9.19. 소사 및 영등포, 9.21 김포 및 강화도에 진입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아군은 공격기세를 살려서 적을 격파하고 서울을 향한 진격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 기간 중에 나타난 적의 저항은 집요한 것이었고, 아군의 손실 또한 적지 않아서 고전하였으나 대세는 이미 적의 패주로 기울어지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당시 공격부대 상황
* 미 해병 제1연대(대령 풀러) : 영등포 방면에서 계속 분전
* 미 해병 제5연대(중령 머레이) : 9.20. 새벽 행주 나루터에서 한강 도하 후 서울 서측방에서 압력을 가함.
* 한 해병대(대령 신현준) : 9.10. 00:30경 수색을 무혈점령 후 104고지 선까지의 진출 시도
- 작전 경과
·공격부대 편성
* 한국 해병 제1대대(소령 고길훈) : 중앙 담당
* 미 해병 제5연대 1대대(중령 뉴턴) : 우측 담당
* 미 해병 제5연대 3대대(중령 타플렛) : 좌측 담당
·경 과
* 9.21. 14:00 공격 개시
* 9.21. 18:30 한국 해병 제1대대 104고지 완전 장악
* 9.22. 04:00경 적 역습
* 9.22. 07:00경 치열한 백병전 끝에 적 역습 격퇴
- 교훈
·효과적인 공격준비사격 및 연막차장으로 불리한 지형 조건 극복
·인천상륙작전 이후 지속된 공격기세 유지 및 강열한 적 격파 의지
· 연희고지 전투
- 작전 기간 : 1950. 9.22. ~ 9.24.
- 작전 지역 : 서울 서대문구 연희고지(66고지)
- 적군 : 북한군 제25여단 및 제78독립연대
- 아군 : 미 해병 제1사단 5연대, 한국 해병 제1대대
- 상황
·104고지를 점령한 한국 해병대의 제1대대는 중앙에서 연희고지를 향해 진격의 기세를 멈추지 않았다. 좌측의 미 해병 제5연대 3대대는 29고지(안산)를 목표로 우측의 미 해병 제1대대는 철로를 횡단하여 서교동의 105고지를 목표로 하여 각각 공격을 강행하게 되었다.
·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적의 강력한 방어진지가 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이 고지 일대의 지형은 서울 북쪽의 338고지 (인왕산)에서 남서로 295고지가 있으며 이 고지 남동쪽에 3개의 105고지와 연희고지를 중심으로 한 좌우 전후에는 나지막한 능선을 이루었으며 또 이화여대에서 아현동으로 뻗은 일련의 능선은 마치 활 모양의 지형을 형성하고 있었다.
·적은 예측한대로 338고지와 105고지에 이르는 일련의 능선상에 주저항선을 형성하고 총력을 집중하여 방어하면서 결코 서울을 아군의 손에 넘기지 않으려고 발악하였다.
- 작전 경과
·9.22. 07:20 공격 개시
·9.23. 한국 해병대 제1대대와 미 해병 제5연대 2대대와 임무 교대 후 104고지 집결 부대정비 실시
·9.24. 미 해병 제5연대 2대대 연희고지 점령
- 교훈
·적을 알고 나의 능력을 파악 후 대처
·불타는 의지와 용기만으로 싸움에 이길 수 없음
·고도의 전기전술 연마 중요성 인식
· 서울 시가전
- 9.25. 한미 해병대 서울 돌입/시가전 개시
- 9.26.
·한국 해병 제2대대 + 미 해병 제1연대 : 서울역 일대
·한국 해병 제1대대 + 미 해병 제5연대 : 서대문 4거리 일대
·한국 해병 제5대대 + 미 해병 제7연대 : 서울 북쪽 외곽
* 서울시청에 태극기 게양(제2대대 6중대 1소대장 소위 박정모)
- 9.27. 중앙청에 태극기 게양(제2대대 6중대 1소대장 소위 박정모)
- 9.28. 한국 해병대, 중앙청 및 경무대(현 청와대)의 경비임무를 한국 육군 제17연대에 인계
- 9.29. 수도서울 환도식(還都式) 거행(12:00)
* 한국 해병대 : 수도 서울 환도식 간 식장 경비
· 북한강지구 전투
- 9.29. 한국해병 제1·2대대, 미 해병대 배속 해제 원대복귀 후 서울 치안 담당
- 9.30. 서울방어를 위해 북한강 지역으로 출동(서울 동쪽지역 차단 임무)
- 10. 1. 한국 해병 제5대대 원대 복귀, 미 해병대 항공/함포 연락 장교(65명) 해병대사령부 도착
- 10. 2. ~ 5. 북한강 지역 및 금곡 완전 회복, 제10군단의 진출예정선 확보
- 10. 6. 해병대 사령부 집결(인창리 일대)
- 10. 7. 해병대 전 부대 인천 집결, 차기 작전 준비
·제1대대 : 묵호방면 전투 참가
·제2대대 : 목포지구 잔적 섬멸작전 참가, 5대대 : 원산 상륙작전 참가
· 의의
- 함락된 수도 서울 조기 탈환으로 국민의 사기 진작
- 낙동강 전선의 총 반격여건 조성 및 북진 개시
- 해병대의 위대한 업적 창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