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이였던 어느 신부의 회상

by 755 posted Dec 0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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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경험담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지난 1979년 당시, 해병대 신병 훈련소를 수료하고 포항1사단으로 배치된 신병이었습니다. 이때 독재에 항거하는 부산·마산 민주항쟁이 벌어졌고 저는 계엄군으로 소집돼 부산으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해병대는 부산과 마산에 계엄군으로 투입됐습니다.

 

 

 

해병대는 철저하게 비폭력 노선을 지켰습니다. 당시 지휘관이던 연대장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우리는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예해병이다. 국민들도 우리의 빨간 명찰을 보고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때리면 그냥 맞아라. 절대 시민들에게 손대지 말라. 해병대의 역사적 전통을 지켜라.”

 

 

 

연대장의 지시에 따라 줄을 서서 ‘인간 바리케이트’를 만들었습니다. 학생과 시민들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앞줄이 쓰러지면 뒷줄이 앞으로 나서고, 그 줄마저 쓰러지면 또 뒷줄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희한한 ‘비폭력의 침묵 시위진압’이 시작된 겁니다.

 

 

 

학생과 시민들도 당황해했습니다. 갑자기 선두 시위대가 웅성거리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시위대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며 해병대 앞을 보호해주기도 했습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부산과 마산으로 퍼졌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믿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별다른 유혈사태 없이 시위가 마무리됐습니다. 해병대는 부산역과 부산시청 등에서 질서유지 임무를 계속했습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말없이 거리 청소를 하는 ‘계엄군’을 보고 시민들도 우리를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해병대에 대한 정치적인 탄압과 차별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부산 시민들은 ‘이상한 시위진압’ 작전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국민을 보호해준 해병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원래 군인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임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시민들은 민주주의 사회 주체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적 이익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미얀마에서는 이러한 군인과 시민의 역할이 뒤바뀐 것 같습니다. 시민들은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는데, 군인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부당한 명령을 따라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것입니다. 40년 전, 우리나라도 그러했습니다. 2021년의 미얀마에서 1980년의 광주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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